남북이 제8차 장관급회담에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으로 '대화'를 제시함으로써 당사국들 간 위기해소 방식에 관한 공통입장의 토대가 마련됐다. 적어도 문제의 존재에 관한 인식이 공유됐다는 점 역시 확인된 셈이다. 특히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내비친 대목은 북한 핵개발을 문제시한 미국 발표 직후의 위기감에 비해 사태를 완화하는 모양새로 정리하고 있다.그러나 이 정도의 토대 위에서 위기 국면의 돌파구가 어떤 식으로 마련될 것인지를 점치기는 매우 이르다고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회담에서 드러난 북한의 입장이 우리 정부나 미국의 요구정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원론적 수준에 그친 데다 제네바 핵 합의 준수 약속 등 을 싸고 북미간 주장이 평행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부 외교 당국자는 23일 "핵 개발 폐기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북한 입장에서 미국을 설득하는 일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며 "대화의사만을 표명 한 것이 향후 주변국 대응에 어떤 영향을 줄 것 인지는 다시 판단해 볼 일"이라고 신중한 시각을 드러냈다. 핵 문제를 남북 의제화 했다는 점을 성과로 꼽을 수 있으나 북한의 전향적 태도로 보기엔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특히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북한이 대화의 전제로 "미국이 적대 정책을 철회하면"이라는 조건을 언명했다는 점이다. 이 대목이 이후 실제 상황의 변화 가능성을 유동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북한이 미국 특사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의 협상 때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하면서 내건 조건과 같다.
공동보도문에 명시된 핵 문제 조항만 보면 북한은 북미협상에서 언급한 '핵 개발 계획'을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남측 수석대표인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은 이에 대해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한 취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해석대로라면 이번 회담은 앞으로 북미 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에 긍정적 측면 보다는 부정적 측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북한이 이번에 남한을 배제하려던 기존입장을 접고 남측에게 성의를 보여 중재 역할을 인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새롭게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이 미국에 인정한 핵 개발 계획이 기정사실로 드러남으로써 미국의 '선 핵폐기, 후 대화' 원칙에 더 큰 힘이 실리는 쪽으로 사태가 전개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경우 중재 역할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의 운신의 폭은 그만큼 줄어들 수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개성공단 착공 등 교류협력 분야에서 상당히 진전된 합의가 부정적 분위기에 싸여 실행의 담보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정부는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24, 26일에 각각 열리는 한·미·일 외무장관 회담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대화 의지를 전달할 예정이나 미국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또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대북 압박 공조의 수위가 어느정도일지도 관심이다.
다만 북한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의지를 명시함으로써 향후 핵 폐기 선언이나 핵 사찰 수용 등 진일보한 입장을 밝힐 확률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장관급 회담 남측 대변인인 이봉조(李鳳朝) 통일부 정책 실장도 "북측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대화를 통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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