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평양에서 채택된 제8차 장관급 회담의 공동보도문은 8개항 가운데 7개항이 철도·도로 연결 등 교류·협력에 관한 내용이다. 남북은 특히 공동보도문 서문에서 최근의 관계를 긍정 평가한 뒤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해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나갈 것을 다짐했다. 공동보도문 문안만 보면 남북관계는 핵 파동 등 외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진행될 태세다.그러나 곰곰이 살펴보면 이번에 합의된 교류·협력은 영해통과에 필요한 해운합의서와 철도·도로 연결에 따른 통행합의서 채택을 위한 실무접촉 개시, 개성공단 12월 중 착공 외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 이마저도 이미 합의했거나 논의해온 사안을 좀더 구체화한데 불과하다. 남북은 오히려 7차 회담에서 이른 시일 내에 개최키로 한 제2차 국방장관회담은 개최 일자 조차 잡지 못했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인정 이후 '뜨거운 감자'가 된 전후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남북이 회담의 대부분을 핵 문제에 할애했으면서도 교류·협력을 강조한 것은, 남북관계 진전이 북한의 핵 개발계획 시인으로 야기된 안보 위기의 완충 역할을 할 것이라는 공감 때문이다. 북측은 북미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남북관계의 끈마저 놓을 경우 북일관계 등 외교적 성과는 물론이고, 내부 경제개혁 계획도 물거품이 될 부담을 안고 있었다. 남측도 경의·동해선 연결 공사 착공 등 남북관계의 성과를 최대한 살려 임기 말 햇볕정책에 탄력을 주고, 이를 통해 역으로 핵 위기 정세에 영향을 주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정부 당국자는 "남북은 1990년대 초반 북한의 영변 핵 위기로 인해 10년 가까이 교류·협력을 단절해야 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면서 "때문에 공동보도문 1항에 핵 문제에 대해 '공동 노력'하고, '협력'한다는 문구가 들어갈 수 있었다" 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간 교류·협력이 핵 문제로 야기된 국제적 긴장국면을 돌파할 실마리가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북측은 공동보도문에 '핵'이라는 문구를 넣는데 동의했지만, 이 문제가 남북회담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북측은 핵 개발 시인 경위도 남측에 설명하지 않았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金鍊鐵) 연구교수는 "핵문제를 대화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남북간 교류협력 등 주변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면서 "그러나 북미관계가 지지부진하거나 대선을 앞둔 남한내 정국이 불안해질 경우 남북관계의 보폭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 이라고 예상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