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전화나, 번호가 알려진 휴대폰을 사용하는 건 알몸을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실제 휴대폰 등에 대한 도청이 가능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기업체는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도청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 정치권에서 청와대 고위인사, 검찰 간부 등의 은밀한 통화내용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도청에 대한 공포는 거의 노이로제 수준으로 심화하고 있다.
■경호팀이 미리 도청검사
정치권에서는 휴대폰 교체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 중진 A 의원은 최근 자신의 휴대폰을 보좌관조차 모르는 번호로 바꿨으며, 은밀한 이야기는 필담으로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나 검찰마저 도청당하는 게 사실이라면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는 판단 때문.
휴대폰 3∼4개로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아 최근 도청 방지 비화기(秘話機)가 달린 휴대전화를 구입한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정·재계 인사들과의 만남 장소에 미리 경호팀을 보내 도청장치 설치 검사를 하고 있다. 국정원의 도청사실을 주장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최소 7개의 비밀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바람에 이 후보조차 그의 번호를 몰라 바로 통화하지 못할 정도다.
■중요 내용은 공중전화로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다. 22일 위원장의 통화사실이 폭로된 금융감독원의 간부는 "민감한 업무 내용은 아예 유선이건 무선이건 전화로 하지 않는다"며 "조금이라도 중요한 내용은 대면해서 전달하라는 묵시적 공감대가 이뤄져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임인택(林寅澤) 건설교통부장관은 휴대전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중요한 통화는 반드시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대적인 특별감찰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경찰 내부에서는 "유무선 전화로 사담을 나누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농담마저 돌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기업은 위성전화만
기업체는 도청에 대해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주요 임원 사무실 유선전화에 도청방지 장치를 설치했으며, 매년 두차례씩 도청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최근 20억원을 들여 이메일 보안시스템을 설치한 대한항공은 중요한 사안은 이메일을 이용하거나 직접 대면, 서면을 통해 논의한다.
특히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 간부와 한국주재 대사관 관계자들은 '한국은 도청 공화국'이란 인식 때문에 본국과 통화할 때 위성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관련업계는 즐거운 특수
유무선 전화 도청방지 중견기업인 G사 관계자는 "요즘 기업과 정치인들로부터 하루 4∼5건씩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고, 보안 업체 H사의 관계자는 "액수에 상관없이 외국의 최첨단 도청방지기를 수입해달라는 주문도 있다"고 전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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