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TV드라마에서는 경찰이 귀신같이 범인을 잡아낸다. 명백한 과학적 증거 앞에 용의자는 결국 고개를 떨군다. 법의학은 과학수사의 위력을 키워주고 있다. 12일 발생한 발리 테러사건의 수사에도 인도네시아 외에 6개국의 정보·수사전문가와 법의학자들까지 모두 9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MBC TV가 매주 토요일 오후에 방영하고 있는 'CSI과학수사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경찰국 현장감식반의 활약을 다룬 범죄수사물이다. 곤충학자인 반장을 비롯한 반원 5명은 살인사건 현장을 누비며 과학적 감식과 분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수사과정에는 첨단 장비와 음향학·토양학·생태학 등의 지식이 총동원된다. 수년 전에 방영된 외화시리즈 '형사 퀸시'의 주인공은 의사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법의관인데, 우리나라엔 이런 직종이 없어 형사로 번역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법의학자는 30여명, 법의학 교실이 있는 대학은 겨우 5군데뿐인 실정이다.
■ 법의학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검시(檢屍)다. 특히 변사의 경우 검시의의 사인 판단이 결정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의관의 일을 검사가 맡고 있지만, 실제로는 검사의 지휘를 받은 경찰이 의사의 도움을 얻어 대행하고 있다. 그런데 법의학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가 모자라 일반 의사와 한의사까지 동원된다. 또 현장을 제대로 보존해도 사인 규명이 어려운데 초동수사 단계에서 현장을 훼손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하다. 법의학적 검증이 필요한 주검 중에서 부검이 실시되는 것은 6.3%에 불과할 만큼 부검이 소홀하다는 통계도 있다. 과학수사는 아직 요원하다.
■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 한 달이 돼 간다. 내주 초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된다는데 사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11년 전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능력으론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유골을 검사해 온 경북대 법의학팀도 "검사결과와 자료가 정리되면 법의학자 회의를 열어 논의하고 그래도 안 풀리면 외국 법의학자에 의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사인을 가려냈으면 좋겠다. 유골 발견 당시 우리 사회의 어린이 보호와 미아찾기 능력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과학수사 능력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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