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월드컵 때 고생 많이 한 사람이야. 표창 하나는 줘야 할 것 아니냐." 월드컵 성공개최에 따른 정부포상 대상자 선정 작업에 참여한 대전시 공무원 K(53)씨는 요즘 마음고생이 심하다. 봇물처럼 밀려드는 훈·포장 요구 공세가 감당 못할 지경인데다 자칫 원성의 표적으로 내몰릴 판이다. 불과 4개월 전 월드컵열기에 휩싸였던 전국의 지자체가 이번에는 정부의 무더기 훈·포장을 둘러싼 논공행상 다툼에 휘말려 시끄럽다. 훈·포장을 받아내기 위한 물밑 로비전도 치열하다.■"상 달라" 너도 나도 아우성
정부는 월드컵 성공개최 유공자를 포상한다며 지난달 26일 훈·포장과 대통령상, 총리상 등 358명과 장관상 440명 등 모두 798명의 대상자를 선정, 4일까지 보고하라는 지침을 각 지자체에 내렸다. 하지만 대전시와 부산시 등 상당수 지자체는 각계의 로비가 쏟아져 보고기한을 보름이나 넘기고도 대상자 확정에 필요한 인사위원회 개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시민 서포터즈들은 대회 참가국 응원을 비롯, 환영·환송행사 등에 몸을 던져 뛰었는데 "훈장하나 주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고, 건설업계 역시 관급공사 입찰 때 특혜가 주어지는 포상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수상에 매달리고 있다. 공무원들도 근무평정에서 가점이 주어지는 훈·포장을 받기 위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월드컵 공로를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일부 공무원은 연말에 내려지는 감사 관련 정부의 징계조치를 염두에 두고 이번 기회에 상을 타 경감혜택을 입자며 로비를 벌이는 실정이다.
■상 주려다 인심만 흉흉
각 지자체는 월드컵 훈·포장이 오히려 직원끼리 불만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대구시는 내부반발을 우려, 공무원직장협의회측과 사전 협의까지 거쳐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탈락한 공무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탈락자들은 "월드컵은 물론,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컵 축구대회 때도 집에 제대로 못들어가고 고생했는데 간부 위주의 공무원만 수상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대상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실·국장들이 추천한 155명 가운데 70명의 수상자를 확정, 행정자치부 보고를 마친 서울시의 경우 같은 사무실 근무자들끼리 미묘한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어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같이 고생해놓고 옆 사람만 표창 받는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부산시의 경우 월드컵 경기뿐만 아니라 본선 조 추첨행사까지 개최했는데 다른 개최도시와 같은 수의 포상대상자를 배정한 것은 말도 안된다는 원성이 자자해 200여명에게는 시장 표창을 주는 고육책을 짜내기도 했다.
강낙규(姜洛圭) 대전시 월드컵기획단장은 "월드컵 유공 훈·포장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못 받으면 이상하다는 풍조마저 생겼다"며 "훈·포장이 인심만 흉흉하게 만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대전=최정복기자 cjb@hk.co.kr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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