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네바 핵 합의를 완전히 파기할 경우 예상되는 첫 조치는 11월 분 대북 중유 선적의 중단이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핵 합의에 따라 북한에 핵 동결 의무를 지우면서 매년 50만 톤의 중유를 북한에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경수로 건설 지원에 대한 재정 부담에서 빠지는 대신에 경수로 건설 공사 완공 때까지 북한의 전력난 해소를 위해 중유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이에 따라 미국은 1년 분의 중유 50만 톤을 월별로 나눠 8년째 제공하고 있다. 의회의 예산 통과 지연으로 6개월여까지 선적이 늦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매달 한번 꼴로 선적하는 원칙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사실 인정으로 이 같은 의무는 사실상 없어졌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10월 선적분은 이달 초 싱가포르 항을 떠나 북한으로 향하고 있어 미국이 공급 중단 조치를 취하더라고 현실적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11월 분 선적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의 파기를 선언한 이상 그 합의는 실효된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취할 경우 언제든지 예산 집행을 보류하거나 취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올 말까지의 선적분을 위해 국무부 대외활동예산 중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예산 항목에 9,050만 달러를 책정해두고 있다.
내년에도 중유 선적이 이뤄질지는 더욱 어려운 문제다. 미 국무부는 2003년 중유 공급분으로 7,500만 달러의 예산 승인을 의회에 요청해 둔 상태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중간선거를 치른 후에는 '레임덕 회기'로 접어들어 행정부의 공급중단 조치 여부에 관계없이 의회의 연내 승인 자체가 불투명하다. 게다가 다음 회기로 예산안 심리가 연기될 경우에도 북한의 핵개발 시인에 대한 의회 내의 부정적 여론으로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전망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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