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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패트롤]강원 탄광촌 관광지 변신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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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패트롤]강원 탄광촌 관광지 변신현장

입력
2002.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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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강원 정선군 사북읍 사북역 앞. 충북 제천에서 이어져 온 '삼팔(38번)국도'의 4차선 확장공사가 한창이었다. 한 편에서는 내년 3월 개장 예정인 메인카지노(지금 있는 정선카지노는 스몰카지노) 진입로 공사 차량이 줄을 잇고 있었다. 역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10여년째 선거철마다 시늉만 내던 공사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한껏 기대를 나타냈다. 사북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태백시 역시 탄광촌의 때를 벗고 '고원 레저·스포츠의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분주했다. 포크레인 소음과 희뿌연 공사 먼지에 도심 전체가 휩싸여 있었다.정선 태백 등 강원 남부 탄광지역에서 거대한 재활 실험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1989년 시작된 석탄합리화사업으로 폐광이 본격하면서 쇠락해 온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에게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느는 것은 술집과 여관뿐

"사북 읍내에 복덕방만 20여 곳이 생겼습니다. 태백시 전체 부동산업소(14곳)보다 많은 숫자죠." 정선군 고한읍의 스몰카지노 개장(2000년 10월) 전만 하더라도 평당 100만∼200만원 선이던 읍내 1급 상업지 땅값은 사북 메인카지노 개장을 앞두고 평당 500만∼600만원에도 구하기 힘들게 됐다. 광부들이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내던 삼겹살 대폿집과 몇 안되던 단란주점이 전부였던 읍내 주점가에는 얼마 전 룸살롱도 생겼다. 구멍가게 주인 K씨는 "손 크기로 유명한 건설업체 사장님만도 30∼40명씩 수시로 드나든다"고 귀띔했다.

카지노 배후도시인 태백시도 마찬가지. 황지동 일대 중심가에는 1,2년새 음식·숙박업소 40여 곳이 새로 문을 열었고,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으로 전업하기 위해 공사중인 업소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택시기사 A씨는 "외지에서 온 접대부 아가씨만 줄잡아 300여명이 북적대 초저녁만 지나면 빈 방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태백 시내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술집과 여관이 늘어나는 것은 공사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주민들이 살려면 관광객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에는 정부가 대주는 돈(폐광지역진흥사업비 등)으로 건설경기가 살아나고 있지만, '개발 이후'까지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지부진한 개발사업

태백시 인구는 최근 10여년 새 절반 밑(5만5,966명·연초 기준)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도 300명 가까운 순유출을 기록했다. 카지노 계획이 본격화한 뒤 매년 20%에 이르던 관광객 증가율도 지난해에는 5%로 둔화해 '카지노 편승효과'의 한계를 노출했다. 2년 전 태백 중심가에 들어선 M관광호텔 지배인 E(30)씨는 "여름 한 철 제외하면 객실 입실률이 50%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S공인중개사 L(48)씨는 "주민이 안 느는데 아파트만 지어서 뭘 하겠느냐"며 "거래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8월부터 임대분양을 시작한 C아파트도 아직 미분양(6%) 상태였다.

태백 개발의 관건인 민자유치도 난관에 봉착했다. 태백시가 계획한 20여건의 개발사업 가운데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것은 모터스포츠타운과 태백체험공원(민관합자) 등 단 2건. 스키장 등이 들어설 서학레저단지 조성계획은 정부의 폐광지원금 현물출자 원칙에 걸려 사업주체인 태백시관광개발공사(민관합자) 설립도 못하고 있다. 화전민속촌 실버타운, 관광협궤열차사업 등도 사실상 포기단계라고 시 관계자는 밝혔다. 한 주민은 "탄광이 문 닫고 나면 관광으로 먹고 산다지만 아직은 공사판에서 흘러나온 돈으로 술집 밥집만 재미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막장'에 몰린 광부들

폐광지역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광부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사북역 맞은 편 언덕을 따라 10분만 걸어가면 닿는 (주)동원 사북광업소. 740여명의 광부들이 8시간 3교대로 하루 1,400톤의 무연탄을 캐내고 있지만, 공장 관계자의 말처럼 이 곳 역시 '산소마스크(정부 지원금)'만 떼면 곧장 쓰러질(폐광될) 운명이다. 갱 입구에서 만난 27년 경력의 막장 광부 K(49)씨는 "폐광까지 길어야 4,5년이지만 아직은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진 퇴직하면 자녀 학자금은 물론, 정부의 폐광대책비(실직위로금)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는 "굴진 소음으로 귀도 어둡고, 최근에는 기침 가래가 심해졌다"며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지만 돈에 코가 꿰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폐광대책비(20년 근속시 약 1억원) 받아 집 구하고, 세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며 "몸이라도 건강하면 공사판에라도 나가겠지만 지난 해 검진에서 규폐증 재진(再診) 판정을 받았다"며 한숨을 지었다.

주민 대다수가 인근 공사판 등지에 일품을 팔러 나간 뒤라 사북5리 '광하촌(鑛下村)' 풍경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광부 출신 K(63)씨는 요즘 집 때문에 밤 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카지노 도로부지에 편입돼 연말까지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33평짜리 집 철거 보상금이 기껏해야 3,0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는 것. 공장 땅이나 국유지에 20여년 동안 무단으로 집을 짓고 살아 온 인근 100여 가구 주민들도 막막해 했다. 한 주민은 "광부 살리고, 마을 살리겠다고 카지노를 유치했지만, 재미는 제 땅에 집 짓고 장사하던 사람과 외지 건설업자들만 본다"며 "일평생 탄 캐먹고 살다가 은퇴한 뒤에도 탄광에 빌붙어 살던 우리는 오히려 카지노 때문에 사지(死地)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탄광촌 특성 살린 개발돼야

태백시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원기준 소장은 "태백 등 탄광지역 개발이 탄광촌으로서의 역사성과 문화적 특징을 살리지 못할 경우 2류 관광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개발논리에 근거한 도시정비나 시설확충은 최소한으로 그치고, 전 국민의 뇌리에 각인된 탄광지역 이미지를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 소장은 "한시적인 정부 지원을 토대로 추진되는 이번 사업이 탄광지역 회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정선·태백=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최대 탄광 철암마을 주민들/"개발 좋지만 원형 보존해 특색 살려야"

강원 태백시 '철암마을'을 아십니까.

현존 국내 최대의 탄광인 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캐낸 무연탄이 지금도 열차에 실려 전국으로 실려나가는 곳입니다. 지난 해 문화관광부가 '근대 산업문화유산'으로 선정한 장성탄광 저탄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80년대 호시절에는 3만 여 명의 주민들로 북적댔고, 서울보다 집세가 비쌌던 산골 마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 아닙니다. 1980년대 중반이후 잇단 폐광으로 주민은 5,000명도 채 안 남았고, 철암천 1.5㎞를 끼고 번성했던 가겟집 10곳 가운데 7곳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주민의 약 10%는 실업자입니다. 대부분 폐광으로 실직했거나 나이가 들어 타지로 나갈 수 없는 분들입니다. 이들은 봄이면 태백산에서 나물취나 곤두레 등 산나물을 캐다 팔고, 이맘때는 고랭지 채소밭에서 품을 팔며 생계를 잇습니다.

이 마을은 60, 70년대 탄광촌의 원형이 남아 있는 사실상 국내 유일의 탄광촌입니다. 바람 불면 천장 날아갈까, 비 오면 물 들까 고민하던 광부의 집들이 있고, 아낙네들이 모여 '우물통신'을 퍼뜨리던 공동빨래터가 있고, 막걸리 한 잔에 '백탄가'를 부르던 대폿집이 있습니다. 한 때 산업전사로 불리며 '대한늬우스'의 첫 화면을 장식하던 광부들의 적나라한 삶이 남아있는 곳이지요.

관광·레저시설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태백시에서는 얼마 전부터 철암천변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천변 상가와 집들은 모두 헐릴 것입니다. 마을전체가 헐릴 지도 모릅니다.

태백은 누가 뭐래도 탄광도시입니다. 다른 관광지와 차별화하는데 탄광과 탄광촌도 중요한 자원입니다. 미국의 어느 탄광도시(리노)는 폐광되고 카지노가 들어선 뒤 도박장 입구에 '30분 거리에 100년 전 마을이 있다'는 안내문을 세워 뒀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안됩니까. 도로도 좋고 주거환경 개선도 좋지만 폐광촌 헐어 길 넓히고, 아파트만 짓는다고 외지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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