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비 수사가 마무리되면서 대중음악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라이브공연이 대두되고 있다. 라이브공연은 장르의 다양화와 수준의 질적 향상, 그리고 음악시장의 확대 등 여러 긍정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우리보다 한발 앞서 현대적인 대중음악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외국의 경우 그 자체가 가지는 문화적 생산력과 산업규모가 부러울만한 수준에 올라 있는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우리 대중음악공연의 현실을 바라보면 부러운 마음은 어느새 절망으로 바뀐다. 굳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공연장의 수와 시설문제, 공연장에 붙는 세금문제, 공연에 대한 정부의 지원문제 등 어느 것 하나 배려라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과의 차이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실이나 상황 때문이라 하더라도 대중음악과 클래식음악과의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대중음악공연에 좌석당 부과되는 문예진흥기금을 대중음악공연에 썼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보지 못했으며 음악공연에 체육진흥기금을 내야한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다. 더 나아가 어떤 공연장은 클래식음악 공연을 대관할 때와 대중음악 공연을 대관할 때 대관료를 차등해서 징수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브공연이 대중음악의 대안으로 자리잡길 기대한다는 것은 차라리 무모하기까지 하다.
지난 10여년간 댄스중심의 편중된 음악으로 황폐화된 음악시장과 콘텐츠의 빈곤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다. 어느 날 '비틀스'나 '퀸'같은 걸출한 뮤지션이 나온다해도 그들이 노래할 공연장이 없거나 어렵게 공연을 해도 다음공연을 기획할 여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산업인 동시에 말 그대로 '문화'다. 그리고 그 문화의 중심엔 대중이 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사랑 절망과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의 대중음악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중음악은 문화가 아니거나 오로지 산업일 뿐이라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탁현민 음반기획 제작자연대 간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