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루방과 성산일출봉, 만장굴과 천지연폭포….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제주의 전부였습니다. 하루 이틀 묵으며 그런저런 상징물을 휙 둘러보는 것, 그게 제가 아는 '제주관광'이었습니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전형적인 깃발부대 패턴에 길들여진 탓이었겠지요.하지만 불과 한나절의 드라이브로 제주에 대한 저의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많은 보석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요. 한라산 때문에 날씨도 변화무쌍합니다. 가을인데도 대낮에 갑자기 컴컴해지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지다 거짓말같이 개곤 했습니다. 비가 온다고 공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모양이 달라집니다. 한바탕 드라이브를 즐기고, 내키는 곳에서 주저앉아 쉬는, 제주는 그런 휴양의 땅이었습니다. 사시사철 늘 똑 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아열대 리조트처럼 단조롭지도 않습니다.
한켠에서는 씁쓸한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최근 강남 한 고교에서 제주로 수학여행을 간 학생이 밥을 먹다 집으로 급히 전화를 했답니다. "엄마, 밥이 이게 뭐야, 경찰에 신고해야겠어." 그 아침밥의 원가는 1,200원. 질을 따질 형편도 안 되었겠지요. 관광은 보나마나 '휙 둘러보는' 식이었을 것입니다. 제주에 대한 이 학생의 인상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두번 다시는 못 올 곳'으로 고약하게 남았을 겁니다.
지난 4월 '제주 국제자유도시 특별법' 시행으로 전기를 마련한 제주도 관광업계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된 덤핑으로 동남아 3박4일이 30만∼40만원대까지 떨어진 까닭에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를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발길을 제주로 돌릴 수 있는 방안이나 관광산업의 방향에 대해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제주가 가능성으로 충만한 땅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손에 든 진주를 몰라보고 함부로 다루거나 값싸게 팔아버리는 일만은 없었으면 합니다. 아직도 은빛 억새와 샛노란 감귤이 눈에 선합니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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