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5년에 한번씩 이 맘 때가 되면 혼자 비감한 심정으로 흥얼거려 보는 노래가 있다. 그것은 사이먼과 가펑클이 남미 안데스지역의 토착음악에 가사를 붙여 대중화시킨 '철새는 날아가고(엘 콘도로 파사)'라는 노래이다. 그렇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 의례적으로 철새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시작되기 때문에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당의 얼굴인 대변인을 지낸 전용학 전 민주당 의원과 자민련 원내총무를 지낸 이완구 의원의 한나라당행을 시발로 촉발된 철새들의 대이동은 민주당의 내분과 정몽준 의원을 중심으로 한 4자 연대로 구체화하면서 대선 정국에 지각변동을 가져다 주고 있다. 이 같은 철새 이동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노무현 실험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노무현 후보는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을 제외한 보수 제도 정치권에서는 90년대 이후 이 같은 철새정치에 저항해 가장 원칙을 지켜온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같은 그의 정치철학이 노풍을 불러일으키며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이변을 만들어낸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후보에 당선된 후 초심을 잃어버리고 철새 정치인들의 흉내를 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국민경선에 뽑힌 후보의 행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부산시장 낙점을 부탁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인기가 급락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이후 노 후보가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갔던 무원칙한 선거전략을 반성하고 다시 비타협적인 개혁노선으로 선거전략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사실 노 후보의 인기 하락과 함께 민주당 내의 반대세력에서는 호남과 개혁세력, 20∼30대를 지지기반으로 한 노무현식 선거전략으로는 승리를 할 수 없으므로 DJP 연합과 같은 연합을 통해 기존의 지지기반에 비호남 지역, 보수세력, 40대 이상의 중년층의 지지를 더할 수 있는 덧셈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노 후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 후보는 민주당과 DJP 연대의 경험을 갖고 있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 그리고 민주당과 연대 가능성을 시사한 이한동 전 총리와의 연대 문제에 대해 "왜 한 물 간 사람들, 가만 있으면 끝날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자꾸 살려내려 하느냐"고 반발하며 연대 가능성을 차단했다. 또 정몽준 의원에 합류하려는 세력에 대해 "양지만을 좇는 사람"이라며 이들의 후보 단일화 압력에 저항해왔다.
결국 철새 정치가 지배하는 한국정치의 풍토에서 이 같은 원칙있는 선거전략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사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도 정치는 현실이라는 이름아래 원칙을 버리고 3당 통합과 DJP라는 야합을 통해 집권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문제는 노 후보의 이 같은 선거전략이 어떻게 국민들부터 평가를 받을 것이냐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철새 정치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그 동안 지역주의에 사로잡혀 철새 정치인들을 응징하기보다는 용서함으로써 철새 정치가 계속되도록 사실상 사주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무원칙한 덧셈의 정치를 거부해 온 그의 정치 경력이 노풍이라는 덧셈의 정치를 가져다 준 반면, 새로운 지지세력을 더하기 위한 덧셈의 정치 차원에서 시도한 김 전 대통령 방문이 오히려 인기하락이라는 뺄셈의 정치를 가져온 노 후보 자신의 경험은 원칙의 정치가 인기상승을 가져다 주고 철새 정치가 오히려 인기하락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이제 문제는 철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과연 노 후보에 대한 지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철새 정치에 대한 '분노 따로, 선거 따로'의 이중 행동으로 나타날 것인지 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