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옥(玄炳玉·81·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씨는 30년째 청량리 역 뒤편 전농동에서 연탄을 나르고 있다. 그는 "아직도 '뜨끈뜨끈'한 것을 좋아하는 노인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온기를 배달하겠다"고 말했다.1980년대 말부터 도시가스가 연탄을 대체하고 있지만 현씨는 21일에도 새벽5시에 일어나 이문동 공장에서 받아온 연탄 500장을 노부부가 살고 있는 두집에 배달했다. 그 동안 재개발로 고층아파트가 들어섰지만 현씨가 리어카를 끌고 가려면 오르막 경사가 만만치 않다. 리어커 뒷면에는 미끄러질 때를 대비해 폐타이어 하나를 매달았다.
현씨는 "한창 때는 이 일대를 휩쓸며 하루에 두 차(트럭 한 대분 연탄 2,000장)를 했는데…"라고 회상했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현씨의 첫 일은 장작 나르기. 그는 청량리 역에 집결되는 나무들을 장작으로 패 용두동과 제기동, 전농동 일대에 날랐고 70년대 들어 연탄이 장작을 대체하면서 업종을 바꿨다.
그러다 가게를 얻어 '칠성연탄'문패를 단 것이 77년. 한 손에 4㎏ 연탄 두세장을 들고 창고에 차곡차곡 쌓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인근 연립주택 1층 길거리에서 3층 창으로 몸을 내민 아들의 손바닥에 연탄을 던지는 묘기도 부려야 한다. 몇 년 전 관절염으로 누운 아내 이도화(71)씨가 언제나 뒤에서 리어커를 밀었고 막내가 군입대 전날까지 일을 도왔다. 한 장에 50원 남짓 남는 연탄배달로 3남2녀 자식들을 다 키워냈다.
5년 전부터는 수지가 맞지 않아 창고를 없애고 공장에서 직접 배달하고 있다. 주요 고객은 아직 난로를 때는 가게나 고깃집, 여인숙 등. 일반 가구는 리모델링을 할 때마다 도시가스를 들여놔 현재 20여곳에 불과하다. 현씨는 사나흘에 한 번씩 리어카를 끌고 집을 나선다. 올 봄 동네 연탄가게 3곳이 문을 닫아 이제 전농동 일대에는 현씨만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가업을 잇고 있는 것은 차남 선철(45)씨. 2.5톤 트럭을 끌고 인제, 청평 등 강원도 시골 농가로 나서고 있다. 매일 새벽 3∼4시에 집을 나서지만 한 장에 280원하는 연탄값으로는 트럭의 기름값 대기도 빠듯하다. 올 초 대성연탄이 문을 닫으면서 이문동에 있던 7개 공장 중 삼천리연탄만 남았다. 선철씨는 얼마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경비실에 연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그 곳 부인들로부터 "이게 뭐야, 빨리 치우지 못해"라는 핀잔을 듣고 업종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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