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제네바 협정 파기 간주' 발언은 북한 핵문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심각한 국면으로 가고 있음을 말한다. 파월 장관에 앞서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도 부시 행정부의 고위소식통을 인용, 미정부가 제네바 협정 파기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정부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아직 아무 결정이 내려진 바 없다" 며 "한·미·일 등 관련국들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이미 제임스 켈리 특사에게 제네바 협정이 무효화(nullify) 한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어, 이 협정의 유지는 이래 저래 어렵게 됐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미국이 제네바 협정 파기를 주장하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한 압박수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기조로 볼 때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는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네바 협정 파기가 가져올 가시적 조치는 미국이 북한에 제공하고 있는 연 50만톤의 중유를 계속 공급할지 여부와 공사가 진행중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사업을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없다.
제네바 협정 파기가 최종 결정된 게 아니어서 두 사업은 계속되는 게 옳다. 미국은 10월분 중유를 선적했으며, 내년 상반기 예산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KEDO 결정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및 유럽연합(EU)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거쳐야 한다.
우리는 차제에 제네바 합의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새로운 틀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우선 벼랑 끝 협상이라는 모험주의를 버리고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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