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성 음반 프로듀서 1호’로 알려진 이인영을 만났습니다. 최근 ‘첼로’라는 예명으로 자작곡을 프로듀싱한 음반을 내놓았습니다.음반으로는 신인이지만 한양대 작곡과를 나와 델리스파이스 신승훈 에코 등의 음반에 작사, 작곡, 편곡으로 참여했던 베테랑입니다.
‘여성 프로듀서 1호’라는 보도자료를 보며 반가운 마음보다 씁쓸한 생각이 앞섰습니다. 여성 1호가 뉴스거리가 된다는 건 바꿔 말하면 그만큼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얘기이니까요.
사실 가요계는 성별로 업무가 확연히 구별됩니다. 작곡가는 죄다 남성이고 작사가는 여성 일색입니다. 곡 프로듀서는 몰라도 음반 전체를 책임지는 여성 프로듀서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쉽게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여성은 언어에 재주가 있고 섬세한 반면 남성들은 창작을 잘 해서 그렇다”고도 하고 “작사는 혼자 해도 되지만 작곡이나 프로듀싱은 밤샘 작업도 많고 많은 사람을 부려야 해 힘들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인영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창작을 잘하고 밤샘 작업을 견딜 수 있는 여성 프로듀서 지망생은 많다.
여성은 프로듀서를 할 수 없다는 제작자들의 선입견이 장벽”이랍니다. 가요계 풍토가 인맥으로 작업하는 분위기이다보니 작품을 보고 이야기하는 작사, 작곡가와는 달리 프로듀서는 작품을 보기 전에 이미 믿고 일을 맡겨야 하는 것이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도 오래 전부터 프로듀싱을 해보고 싶었으나 음반을 맡기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고 무언가 항의를 하려 해도 “너, 이 바닥 뜨고 싶냐” 같은 험한 말만 들었다고 합니다.
영화계만 해도 여성 감독, 여성 프로듀서가 이미 뿌리를 내렸고 건설현장, 직업 군인 등 여성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성이라는 것이 실력 차이를 덮어주는 방패막이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기회 자체가 봉쇄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아마 가요계도 어떤 여성이 큰 성공을 거두고 나야 생각이 바뀌겠지요.
그런 점에서 ‘여성 가요 프로듀서 1호’인 첼로가 맡아 12월에 내놓을 김광민 등 유명 연주자들의 프로젝트 음반과 이후의 작품들이 정말 잘 되었으면 합니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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