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 추진 첩보를 입수하고도 3년여 동안 공개하지 않은 배경과 첩보의 수준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1999년의 첩보는 단순한 수준에 불과하고 북한의 핵개발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원심분리에 필요한 자재'라는 다소 구체적인 첩보를 입수하고도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을 의식해 고의로 축소, 은폐해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당시 첩보는 미 신문 보도 수준'
이 준(李 俊) 국방장관은 21일 국회에서 "당시 미국의 신문 잡지에도 이런 내용(99년 첩보)이 나왔다"면서 "미국과의 첩보 교환은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국회 국방위에서의 보고는 의원들이 '미국이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할 동안 군은 무엇을 했느냐'는 질책에 대해 '우리도 알고 있었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 역시 "99년 3월 미국 워싱턴타임스가 '북한이 농축 우라늄으로 핵무기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에너지성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 한미 양국이 이를 바탕으로 추적해 왔다"며 "99년 첩보도 이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단순 첩보를 무조건 공개할 경우 혼란을 부추길 수 있어 정확한 내용 파악을 위해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햇볕정책에 악영향 우려?
그러나 일각에서는 99년의 첩보가 그렇게 단순했다면 굳이 군이 미국에 전달하고, 국회 국방위에서 비공개로 의원들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며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 주장의 배경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집권 후 추진해온 대북 화해정책에 '북한의 핵개발 첩보'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군의 보고를 정부에서 고의적으로 축소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깔려 있다. 더욱이 99년은 김 대통령 취임 이듬해로 햇볕정책이 본격화된 시기이다. 사실관계가 어떻게 결말지어지든 군은 서해교전 전 북한 도발 가능성 첩보 묵살의혹에 이어 북한 핵 개발 첩보 비공개 사실까지 밝혀져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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