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꼴이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다. 국민경선 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중진의원이 "국민경선은 사기였다"는 폭탄선언을 하는가 하면 한나라당 공격에 열을 올리던 전 대변인이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자기들이 뽑은 대통령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곁눈질 하는 탈당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이유는 단 하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인기가 떨어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낮아진 후보와 운명을 함께 하느니 차라리 다른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후보 단일화 추진이니 '헤쳐 모여'니 하는 그럴듯한 설명을 하지만 결국은 선거에서 유리한 쪽에 붙겠다는 소리다.
민주당 사태는 한 정당의 내분으로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어느 당의 누구를 지지하고 누구를 반대한다는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우려케 하는 심각한 사태다.
올 4월 민주당이 국민경선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 노무현씨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을 때 많은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희망을 걸었다. 그것은 민주정당의 가능성과 페어플레이의 묘미를 일깨우는 정치 축제였다. 기존의 정치에 절망하던 사람들은 노무현 후보가 몰고 올 변화의 바람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의 인기는 지속되지 못했다. 4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10% 이상의 격차로 따 돌리며 50%를 훌쩍 뛰어넘던 지지율은 6월을 고비로 떨어져 이회창 후보에게 뒤지고 있다. 한발 늦게 대선전에 뛰어든 정몽준 후보에게도 뒤지고 있다.
노무현 지지율이 떨어진 데는 본인의 잘못도 있다. 노무현 후보를 향해 달아오르던 유권자들의 열망은 그의 몇 가지 약점이 드러나자 식기 시작했다. 신중하지 못하고 언행이 투박하고 불안정 하다는 등의 평판이 이유가 됐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이유는 민주당 사람들이 노무현 후보 세우기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선에서 잇달아 패배하자 당은 난파선처럼 흔들렸다. 노무현 후보는 재경선 문제로 오락가락하면서 심한 공격에 휩싸였다. 한나라당에서보다 더 심한 공격이 민주당 내에서 쏟아졌다.
선거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지고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 사람들은 자신의 신뢰에 먹칠을 하면서 다음 선거까지 망칠 수 있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국민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던 김영배 의원은 "국민경선은 사기였다. 나를 건드리면 더 까발리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민주당 사람들은 국민을 속인 사기꾼이 된다.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사람들이 이제 무슨 말을 한들 누가 믿겠는가. 자기 당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당을 뛰쳐나가 다른 후보를 세운다면 국민이 앞으로 정당의 후보경선을 신뢰하겠는가. 경선에서 후보로 뽑힌들 지지율에 따라 언제 낙마할지 모르는 임시후보 밖에 더 되겠는가.
대선 후보의 지지율 하락으로 빚어진 민주당의 갈등은 97년 한나라당의 내분을 연상케 한다. 한나라당은 그 해 7월 경선을 통해 선출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후보 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이인제씨가 탈당하는 등의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당의 결정을 지켜야 한다는 정면 돌파론으로 방향을 잡았다. 97년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경선을 번복하지 않았던 것이 당의 자산이 됐고, 그 자산으로 지금도 싸우고 있다.
민주당 사람들은 왜 당을 깨면서까지 모험을 하고 있는가. 탈당한 한 의원은 "냉전 회귀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고 말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지 언제인데 지금 냉전 회귀 세력인가. 민주당 사람들은 잘 못하고 있다. 한국 정치를 몇 십년 뒤로 후퇴시키고 있다. 야당이 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뢰를 잃는 것임을 모르는가.
/장명수 본사 이사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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