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한중일 국제무차선(無遮禪) 대법회가 열린 부산 해운대구 좌1동 해운정사.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원통보전 앞마당을 전국에서 몰려든 5,000여 명의 사부대중이 가득 메웠다.오전 10시부터 시작한 무차선회에서는 진제(眞際·71) 동화사 조실, 중국의 정혜(淨慧·69) 조주백림선사 주지, 일본의 종현(宗玄·54) 후쿠오카 숭복사 조실이 각각 법문을 하고 10여 분씩 사부대중과 문답을 주고 받는 법거량(法擧揚)이 이어졌다.
진제 스님은 "누구라도 살아가면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화두를 잡고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도 부처님 지위에 오를 수 있다"며 "참나를 찾는 화두를 오매불망 챙기고 의심을 지어가야 한다"는 법문을 했다.
이어진 법거량 시간. 대중 속에서 일어난 노(老) 스님이 대뜸 "내려와 차나 한 잔 하시오"라고 말하자 진제 스님이 "억"하고 무시해버린다. 시작부터 '선문답(禪問答)'이 오고 간다. 한 외국인 스님이 단상으로 달려가 손바닥으로 법상을 내리치자 진제 스님이 "여우 같은 놈"이라고 준엄하게 꾸짖는 등 격한 감정이 표출되기도 했다.
또 다른 스님이 일어나 물었다. "스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의 소리는 지금 어디에 담았습니까." "한 마디도 담은 바가 없소."(진제 스님) "그 소리가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간 바도 없는데 온 바가 있겠소?"(진제 스님) "지금 오고 있는 그 소리는 어디에서 오고 있습니까"라며 재차 묻자 진제 스님이 주장자를 한번 내리치고는 큰 소리로 "할"을 외쳤다. 힘있게 답변하는 스님에게 신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중국의 정혜, 일본의 종현 스님은 각각 통역을 통해 대중에게 법문을 했다. 정혜 스님은 "탐진치(貪瞋癡)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자타(自他) 관계는 진정한 화합에 도달할 수 없다"며 "인성(人性)을 끌어올려 불성(佛性)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했다. 그는 "옳고 그른 삶의 진리에 답해 달라"는 대중의 질문을 받고는 "할"이라고 쩌렁쩌렁한 육성을 내지른 뒤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 종현 스님은 "극락정토는 지금 이 장소에 분명히 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웃는 얼굴로 부드러운 말을 쓰고, 서로 손을 맞잡는다면, 우리들이 부처님과 똑 같은 청정법신"이라는 법문을 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어떻게 마음을 챙기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라도, 평상심으로 이거다 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번 무차선회는 간화선(看話禪)의 진면목을 바로 세우고 이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대회 개최를 주관한 진제 스님은 "오늘날 선사상은 세계 정신문명의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이번 대회가 지구촌 이웃들에게 생활 속에서 참나를 밝히는 선수행을 전파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김영화기자 yaaho@hk.co.kr
■ 무차선회란
승속(僧俗)과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참여해 고승들로부터 직접 깨달음의 경지를 듣는 자리다. 인도에서 국왕이 선지식(善知識)을 모시고 차별없이 법문을 듣는 데서 시작, 중국으로 건너와 교단의 중요 문제를 공개토론을 통해 결정하고 법거량이 이뤄지는 자리로 발전했다. 무차(無遮)라는 이름은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어떤 질문도 막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했다. 한국에서는 1912년 방한암 스님이 금강산 건봉사에서 마지막으로 무차선회를 열었고, 그 맥을 이어 서옹(西翁·90) 백양사 방장 스님이 백양사에서 98년, 2000년 무차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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