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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혼 사마천/宮刑 치욕 견디고 천년을 얻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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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혼 사마천/宮刑 치욕 견디고 천년을 얻은 영웅

입력
2002.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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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퉁성 지음·김은희 이주노 옮김 이끌리오 발행·1만6,000원"(사기를) 완성시키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극형을 당하면서도 분노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에 이 글이 세상에 나와 명산에 소장되고 알 만한 자에게 전해지며 큰 마을과 도시로 퍼져나간다면, 전에 당하였던 굴욕이 조금은 보상되리라 믿습니다. 이제 더 참혹한 처형을 당한다 할지라도 어찌 후회됨이 있겠습니까." 불후의 역사서 '사기(史記)'를남긴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90?)은 말년에 벗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에서 궁형(宮刑·거세형)의 아픔을 견디며 '사기' 저술에 매달린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이기고 천년을 얻은 영웅, 사마천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엮은 '역사의 혼, 사마천'이 번역, 출간됐다. '사기'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 천퉁성(陳桐生) 산터우(汕頭)대 중문과 교수는 꼼꼼한 사료 분석으로 사실(史實)에 기초하되 사마천의 내면 깊숙이 붓끝을 넣어 생각과 감정까지 읽어냄으로써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한 무제에 이르는 3,000년 중국 역사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기록했지만, 정작 그에 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의 상당부분은 저자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저자는 주석을 통해 어느 부분이 허구이며 그렇게 상상한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혀 여느 역사 소설과는 다른 신뢰감을 준다.

사마천은 오제(五帝)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천관(天官), 즉 사관(史官) 집안의 후손으로, 부친 사마담은 주 대에 맥이 끊긴 가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신보다 나이 어린 이를 스승으로 삼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한다. 사마천은 그 슬하에서 고금(古今)의 서적들을 두루 탐독하고 부친의 지방 순시에 따라 나서 문물과 지리를 익히면서 풍부한 문화적 소양을 쌓는다. 그가 '사기' 저술을 결심한 것도 "내가 죽거든 너는 향을 사르고 절할 생각만 하지 말고 공자의 '춘추'를 이을 책을 쓰라"는 부친의 유언 때문이었다.

사마천은 부친의 뒤를 이어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太史令)에 봉직된 뒤 '사기' 저술에 착수하지만 곧 시련을 맞는다. 흉노족 정벌에 나섰다가 투항한 이릉(李陵)을 변호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에 처해진 것이다. 한때 자결을 생각한 그는 "곤욕을 치르고 나서 '춘추'를 지은 공자, 쫓겨나고서 '이소'를 노래한 굴원, 두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고서 '병법'을 완성한 손빈" 등 진정한 영웅들의 삶을 우러러 보면서 치욕을 견딘다.

'사기'는 왕조를 중심으로 역사를 시대 순으로 훑는 '본기'와 인물 이야기를 담은 '열전'을 축으로 하는 기전체(紀傳體)로 쓰여졌는데, 이는 후세 역사 기록의 전범이 된다. 사마천은 특히 열전에서 영웅호걸은 물론, 자객 점쟁이 상인 등 하찮게 취급 받던 이들의 일대기까지 두루 담았다. 이처럼 치우침 없이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치욕을 '역사의 혼'으로 승화시킨 강인한 정신력과 함께 '사기'가 2,0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불후의 역사서로 칭송 받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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