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리 고프 지음·황적준 옮김 해바라기 발행·9,800원1990년 1월 미국 테네시주의 한 야산에서 15세 가량 된 소녀의 유골의 발견됐다. 시신은 완전히 부패했고 살점이 하나도 없어 죽은 시기를 정확히 알기 힘든 상태. 그때 한 법곤충학자가 시체의 두개골에서 쌍살벌류의 말벌이 지어놓은 벌집을 발견한다. 그는 쌍살벌류 말벌이 대개 4월 초 깨끗하고 건조한 곳에 집을 짓는 사실에 착안, 말벌이 집을 지은 4월 당시 두개골이 이미 깨끗이 비워져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두개골에서 애기똥파리 번데기도 발견한 그는 애기똥파리의 유충인 구더기가 살점을 모두 먹은 뒤 말벌이 집을 지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4월은 아직 날이 차기 때문에 애기똥파리가 활동하기는 어려운 계절. 그렇다면 두개골의 살점이 없어진 건 겨울이 닥치기 전인 전년도 가을이다. 그는 이를 종합해 유골은 최소한 죽은 지 18개월은 지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파리가 잡은 범인'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법곤충학 안내서이다. 법곤충학은 시신이 부패할 때 덤벼드는 곤충의 종류가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다른 사실을 이용, 범죄의 시점과 방법을 추적하는 학문으로 선진국에서도 1980년대에 들어서야 체계가 잡혔다. 저자는 하와이대 곤충학 교수로 미 연방수사국(FBI) 아카데미 강단에도 서는 등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다.
저자는 시신에서 발견된 파리와 구더기로 살인자를 찾고 파리와 구더기가 주로 발견된 시신의 부위를 통해 시체의 유기 과정을 추적하며 덩치 큰 구더기를 이용해 사망자가 마약중독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법곤충학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가 인도한 법곤충학은 아직은 낯설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분야이기도 하다.
국내 법의학계의 권위자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도 한 역자 황적준 고려대 의대 학장은 "법곤충학 분야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로 평가했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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