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새벽 1시께 L사의 홈쇼핑채널. 시청률이 높지않은 시간인데도 진행자가 어린이 유전자(DNA) 검사 패키지상품을 선보이자 문의전화가 잇따랐다. 이날 방송된 상품은 탐구성 등 4개 항목의 유전자 검사와 심리 검사를 해주는 21만여원짜리 상품. 순식간에 100여개가 팔려나가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상품을 기획한 이모씨는 "교육열이 높은 서울 강남 일대의 부모들이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능 성격 적성까지 파악 가능'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유전자검사가 다시 학부모들을 유혹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지능, 성격, 적성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는 모토를 내걸고 비밀리에 판촉활동을 벌이던 업체들이 홈쇼핑에 진출할 정도로 유전자 검사가 대중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유전자 검사 업체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중 지명도가 가장 높은 D사는 체력, 비만, 탐구성, 중독성 등 건강이나 인성과 관련된 유전자 11개 항목의 검사와 지능검사, 인성검사, 적성검사를 묶은 패키지상품을 49만5,000원에 판매중이다. 검사 대상은 갓 태어난 아이부터 중고생까지. 한달 평균 10여명이 검사를 받는다고 이 업체 관계자는 전했다.
서울 강남 등의 몇몇 초등학교는 아예 단체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Y사 관계자는 "전체 학생 중 50%가 검사를 받은 학교도 있다"고 귀띔했다.
■작년엔 큰호응 못얻어
어린이 인성 검사가 처음 등장한 지난해 초. 당시만 해도 검사비가 70만∼80만원선에 이르고 유전자 검사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쓴맛을 보았던 업체들이 가격을 내리고 논란을 빚었던 지능 유전자 검사를 제외시키는 기법으로 바꿔 학부모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가 확산되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대다수 부모들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이의 적성이나 지능을 알아내고 장래를 결정하는 잣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 D사 관계자는 "전화 문의를 해 오는 부모들 대부분이 유전자 검사만 하면 아이가 장차 의사가 될지, 음악가가 될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전자 검사의 예측력이 아직까지는 믿을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인제대 의대 한태희(韓台熙·36·상계백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종합병원 등 전문의료기관에서는 크게 신뢰하지 않는 검사"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개인의 건강이나 성격을 형성하는 데는 유전적 요인 뿐만 아니라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며 "유전자 검사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점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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