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개발계획 시인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핵 동결을 강조해온 입장을 180도 뒤집은 도전으로, 체제의 생존을 건 모험이다. 북한이 93∼94년 핵 위기 때를 상기시킬 정도로 강경한 미 정부에 대해 굳이 핵 개발을 시인한 배경은 뭘까.미 국무부의 발표 등을 종합하면 북한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핵 개발계획을 흘린 것으로 관측된다. 제임스 켈리 특사가 물증을 제시한 데 대해 어쩔 수 없이 시인한 것이 아니라, 공세적으로 핵 개발을 인정하고 협상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 당국 나름대로 핵 개발 인정이 가져올 파장을 충분히 검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이라크 및 테러와의 전쟁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분쟁관리와 군사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내적으로 경제개혁을, 대외적으로 관계개선을 추진 중인 북한이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불사하는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북한은 켈리 특사에 대해 '심히 오만하고 압력적이었다'고 비난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 의지를 거듭 강조해왔다. 더욱이 조선신보는 최근 "미국이 우려사항이라고 하는 미사일 문제 등은 해결 가능한 일"이라고 파격적인 양보 의사까지 내비쳤다.
때문에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은 벼랑 끝 외교가 아니라 핵을 매개로 미국과의 대화를 트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북한은 핵 개발 사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 문제를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갈 의사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는 외교부 당국자의 언급도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할 경우 핵·미사일·재래식 무기 등 안보 관심사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외교 소식통들은 켈리 특사가 북한으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받았고 미 정부 내에서도 큰 논란이 벌어졌다고 전하고 있다. 북한의 제안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하지만 핵사찰 전면 수용 미사일수출 중단 재래식 전력 감축 등 '광폭적' 내용일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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