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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23)에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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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23)에디슨

입력
2002.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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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0월18일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앨버 에디슨이 84세로 작고했다. 발명가라는 것이 직업일 수 있는가에 대해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를 내지는 않겠지만, 에디슨이라는 사나이를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그만큼 적절한 말도 없다. 에디슨은 21세에 전기 투표 기록기를 발명해 최초의 특허를 얻은 이래 주식 상장 표시기와 인자전신기(印字電信機)에서 탄소 전화기와 축음기를 거쳐 백열 전등, 영화 촬영·영사기, 에디슨 축전기에 이르기까지 일생동안 1,000종이 넘는 특허를 얻었다. '발명왕'이라는 그의 별명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에디슨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그는 "발명을 계속하는 데 들어갈 돈을 벌기 위해서 늘 발명을 했다."에디슨의 업적은 순탄치 않았던 성장기 때문에 더 빛난다. 초등학교를 고작 3개월 다니다가 정상적 교육을 받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 그는 열차에서 신문팔이·과자팔이를 하면서 집안 살림을 도왔고, 기차의 한 구석에서 실험을 하다가 화재를 일으켜 차장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뒤에는 청각 장애까지 얻었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 만년의 술회는 독학을 통해 자수성가한 그의 삶 때문에 더욱더 커다란 울림을 얻었다. 그는 대학 교육을 경멸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보통 교육에 대해서도 "두뇌를 하나의 틀에 맞춰갈 뿐 독창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길러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기업 경영인으로서 에디슨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백열 전등 시스템을 완성하고 이를 상업화하기 위해 그가 설립한 에디슨사(社)에서 그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전등은 19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만했지만, 그것의 발명자는 그 특허권을 둘러싼 소송으로 돈을 잃었을 뿐이다. 에디슨사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모체다.

고 종 석/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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