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방문 당시 북한은 핵무기 개발 추진 사실을 시인하면서 매우 단호하고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타임스와 CNN 방송 등은 미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켈리 특사단이 도착 첫날인 3일 핵 개발 증거를 제시하자 일단 부인했던 북한이 다음날 갑자기 입장을 바꿔 "고농축 우라늄 추출 장치까지 보유하고 있다" , "더 강력한 것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평양에 도착한 켈리 차관보는 3일 회담 의제·일정 조정 등을 위해 김계관(金桂寬)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대표단과 1차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켈리는 첩보위성 등 정보망을 동원해 확보한 북한의 핵 개발 증거를 제시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사실이 아니며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을 되풀이 했다.
사건은 다음날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단장으로 한 북한 대표단과의 본회담에서 터졌다. 켈리 특사는 전날에 이어 북한이 우라늄 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며 최소 핵무기 2기를 만드는 데 충분한 플루토늄을 확보했다는 핵 협정 위반 증거를 제시했다. 핵무기 개발 계획 포기도 함께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켈리 특사는 북한이 제네바 핵협정이 체결된 1994년 이전과 다른 기술을 이용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 계획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강 부상은 켈리 특사를 쳐다보며 "당신네 대통령은 우리를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했다. 당신네 군대는 한반도에 배치돼 있다. 물론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미 국무부 소식통을 인용한 아사히(朝日)신문 보도에 따르면 강 부상은 또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할 수 있는 장치를 구했으며 지금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북한은 이 자리에서 핵보다 더 강력한 것들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해 회담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었다. 미 관리들은 이 발언을 생화학 무기 등 다른 대량살상무기의 보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회담에 참석했던 미 관리들은 강 부상의 어조가 단호하고 공격적이었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후 일관해서 "미국은 오만하고 고압적"이라며 비난했다. 켈리 특사 역시 북한의 변화에 당황해 회담 후 서울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함구했으며 한국과 일본 일정을 단축해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은 이어 우리 정부와 일본에 북한의 핵개발 시인 사실을 바로 통보했으며 3국은 협의에 들어가 26일 멕시코에서 열리는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이후 내용을 발표키로 의견을 모았다. 북한측과 막후 접촉을 통한 해법 윤곽까지 찾은 뒤 공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USA 투데이가 사실을 취재해 특종보도하려 하자 미국은 우리 정부에 양해를 구하고 16일 통상 공식성명 발표 시간도 아닌 저녁에, 그것도 담당인 국무부보다 앞서 백악관이 서둘러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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