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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의 컷]환상을 좇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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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의 컷]환상을 좇아라

입력
2002.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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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영혼을 뒤집어 쓴 딸과 아버지의 이상한 관계를 그린 일본 영화 '비밀'이 첫 주 1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한 데는 주인공 히로스에 료코의 공이 크다. '철도원'에서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를 보였던 료코는 '비밀'에서 여성성을 강조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짧은 교복 치마, 남편이자 아버지인 40대 남자에게 잠자리를 같이 하자며 누워 기다리는 모습은 '원조 교제' 같은 일탈적 섹스에 대한 상상력까지 부추기며 관객을 매우 자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비밀'은 20대의 탄탄한 육체에 들어온 40대 어머니의 영혼과 아버지의 충돌을 그리면서 일종의 세대차에 대해 말하고 있다. 40대 어머니의 영혼은 20대의 매력적인 육체를 얻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신보다 육체에서 찾는다. 그래서 의대에 가고, 연애를 시작하며 남편을 속인다. 여자는 정신적으로 사망한 딸의 죽음에 대한 애도보다 육체적으로 살아있는 딸의 육체에 만족한다. 유물론적 발상?

그러나 어머니의 몸 속에 들어온 딸의 영혼과 아버지의 갈등을 그렸다면 세대 격차에 대해 좀 더 진솔하게 말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캐릭터를 설정했다면, 40대 얼굴을 한 딸은 이런 대사를 날렸을 것이다. "아버지, 좀 천천히 가세요. 아이, 지긋지긋한 관절염…." 혹은 "아빠, 방에 불 좀 넣어주세요. 비가 오려나 몸이 쑤시네!" 그러나 엄마 몸에 들어와 보니, 두 사람의 관계가 딸이 보기만큼 화목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거나 반대로 딸이 보기엔 중년 부부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뜨거운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거나.

그러나 영화에서 이런 선택을 하는 상업 영화는 없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 사람들 눈에 보이는 뚱보 여성 대신 주인공 눈에 보이는 늘씬한 기네스 펠트로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상영 시간 내내 보여주었듯, '비밀' 역시 아줌마 대신 20대 처녀의 몸을 보여주는 데 99%의 시간을 할애했다.

어둠 속에서 밝은 은막을 응시하는 영화의 구조는 결국 '환상'을 좇게 되어 있다. 때문에 상업 영화가 더 많은 환상을 주기 위해 남녀 불문, 젊고 잘 생긴 배우를 장시간 노출시키는 전략은 어쩌면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운명지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은막이 환상 대신 현실을 보여주었더라면? 아마 사람들은 돈 내고 극장가는 대신 공짜로 거울 보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럼 나의 거울은 예술영화 전용관? 컷!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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