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생존자 5명이 15일 24년 만에 일본 땅을 밟았다. 일본 정부 전세기편으로 오후 2시 30분께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마중나온 가족 40여 명과 감격의 재회를 했다. 이어 도쿄(東京)의 한 호텔로 이동해 가족들과 첫날 밤을 함께 보냈다.■감격적인 상봉
양복과 양장 차림에 김일성(金日成) 배지를 단 이들은 일장기와 장미 꽃다발을 들고 트랩 아래서 기다리던 부모, 형제와 끌어안고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모두 건강한 모습이었고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오후 5시 30분께 호텔에서 가족들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왔으나 "오랫동안 여러분에게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정말 만나고 싶었다","고맙다"는 등 한 마디씩 인사말만 하고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이들이 즐겁게 웃으며 가족의 안부를 묻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으나 납치 경위 등을 묻는 질문에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고 대답을 피했다고 전했다.
■초긴장 일본 정부
일본 정부는 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일정 조정과 경비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사자와 가족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귀국이 안전하고 원활하게 마무리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16일까지 머물 도쿄의 호텔 한 층을 전세내 정부 관계자와 가족 외에는 출입을 금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의 고향인 니가타(新潟)현과 후쿠이(福井)현에 지원실을 설치, 전용 차량을 제공하고 정부 연락요원과 여행사 담당자를 동행시킬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이들이 자녀를 북한에 남겨두고 일시 귀국했다는 사정을 고려해 이번에는 영주귀국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앞으로 자유왕래와 가족 동반 귀국이 실현된 이후 영주귀국을 추진할 예정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이날 담화를 통해 "일시 귀국은 납치문제 해결을 향한 제1보"라며 "가족 동반 귀국, 생존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의 진상규명 등을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최우선 사항으로 다루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가족 표정
가족들은 공항에서 이들을 끌어안고 "고생 많았다", "잘 견디고 살아남아줘서 고맙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감격해 했다. 그러나 자녀를 북한에 두고 온 이들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가족들은 피랍자들 방에 예전에 사용하던 물건과 앨범 등을 갖추어 놓았다. 한 가족은"햅쌀밥에 평소 좋아하던 반찬을 잔뜩 준비해 두었다"며 "오랫동안 고생한 몸과 마음을 달래며 기억을 되살리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피랍자들의 동창과 친척들도 마을에 "잘 돌아오셨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재회를 기대하고 있다.
■귀국자 신원
이날 일시 귀국한 피랍생존자는 치무라 야스시(地村保志·47)·하마모토 후키에(浜本富貴惠·47) 부부,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45)·오쿠도 유키코(奧土祐木子·46) 부부, 소가(曾我) 히토미(43) 등 5명이다.
치무라 부부는 1978년 7월 후쿠이현에서 데이트 중 납치됐고 북한에서 결혼해 대학생인 장남, 장녀와 중학생 차남을 두고 있다. 역시 78년 7월 니가타현에서 데이트 중 납치된 하스이케 부부도 북한에서 결혼, 전자계산기 단과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있다. 치무라와 하스이케는 북한 사회과학원 민속연구소 자료실에서 함께 번역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8년 8월 니가타에서 납치된 소가는 주한미군 월북자인 찰스 로버트 젠킨스(62)와 80년 북한에서 결혼했다. 딸 미카(美花·19)와 블린다(17)가 평양외국어대학에 재학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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