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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북녀 응원단이 남긴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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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북녀 응원단이 남긴 감상

입력
2002.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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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끝났더라…> 로 시작되는 미당 서정주의 초기 시가 있다. 두 번째 시집 '귀촉도'에 실린 '행진곡'이다.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 가지고 우리 모두다 돌아가는 사람들…> 통일예감 일깨운 부산AG

부산아시안게임이 끝났다. 개막식부터 남북 선수가 함께 손잡고 입장하여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짐했던 아시아인의 축제가 막을 내렸다. 북한 미녀 응원단도 추억만 남겨놓고 돌아갔다. 환성의 여운이 아직도 손끝에 잡히는 듯한데, 미당의 시처럼 쓸쓸한 파장 분위기가 땅거미처럼 깔렸다.

북한팀 경기장마다 응원 인파가 끊이지 않았던 흐뭇한 대회였다. 우려되던 인공기 갈등도 없이 경기장마다 '원 코리아' 한반도기가 휘날렸고, 남북한의 정서적 동질감이 부풀었다. 통일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는 예감을 일깨운 16일간이었다.

씩씩하고 발랄한 북녘 미녀가 화제를 뿌린 것도 사실이지만,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열정이 북녘 미녀 구경에 있다고 우겨서는 안 된다. 타인이 품은 선의와 이상(理想)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것은 속물 근성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월드컵은 '붉은 악마'를, 이번 아시안게임은 '북녀 응원단'을 마음 속에 뚜렷한 이미지로 각인 시켰다.

이 대회는 DJ에게도 마지막 잔치였을 것이다. 나라가 정상이라면, 대선을 두 달 남겨둔 지금은 DJ집권 5년을 결산하고 미래지향적 교훈을 얻기 위해 공과를 엄정하게 가릴 시기다. 정치계는 차기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헐뜯는 정쟁으로 날이 밝고 저무는 처절한 싸움터가 되었다. 대회기간 내내 4억 달러 대북 비밀 지원설로 소란스러웠고, 언론 역시 거기서 파생되는 불협화음을 확대 재생산하기 바빴다.

집권 초 특정지역 편중 인사로 비판 받기 시작한 DJ는 후기에는 아들 비리로 결정타를 맞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IMF 체제 하의 불황을 이른 시일 안에 극복했고 햇볕정책에서 성과를 거둔, 부인하기 어려운 업적이 있다. 지금 비무장지대에서는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 지뢰제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한 맺힌 이산가족의 상봉을 가능하게 했으며, 또 아시안게임에서 남북한 국민을 강하게 이끄는 인력으로 작용했는가. 그것이 햇볕정책의 결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보수 언론·정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퍼주기'의 공로인 것이다. '4억 달러설'이 마침내 사실로 밝혀진다면, 실망스럽기는 하겠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있는 셈이다. 그것은 역사 위에 '통일비용' 항목으로 기록되어 마땅할 것이다. '누군들 퍼주면서 그 정도를 못하랴'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느 대통령도 북녘에 온기를 제공하려 들지 않은 것이 우리 분단사다.

햇볕정책의 공로 인정해야

두 체제가 통일을 향해 가고자 한다면, 현 정부 이후에도 지금 이상의 대북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쪽은 형편이 어렵고 남쪽은 훨씬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민담에서 구두쇠로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곤 하는 조선시대 자린고비의 생애는 위대하다. 초년에 고아가 되어 절약에 절약을 거듭하여 큰 재산을 이룬 삶도 치열하지만, 어사 박문수의 조언을 받아들여 제방·다리 공사를 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우며 자식에게는 유산조차 물려주지 않은 말년의 행적이 착하고 장엄하다.

미당의 시가 잔치 파장의 쓸쓸한 풍경을 노래하면서도 제목은 '행진곡'이라는 점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12월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남북의 평화행진이 멈춰서는 안 된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가까워진 남북한인의 정서는 늘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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