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판이 음험한 뒷거래와 매수 공작에 멍들어 온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륜과 도덕마저 내팽개치는 비열하고 저급한 폭로를 일삼았던 것이 과거 우리 정치판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군사정부의 강압 통치 하에서 횡행하던 공작·매수 정치가 민주화를 맞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행태는 청산된 것이 아니었다.김영삼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던 장학로 전 청와대부속실장에 대한 비리 폭로가 당시 제1야당인 국민회의(현 민주당)의 제보자 매수로 이뤄졌다는 주장은 우리를 화나고 부끄럽게 한다. 제보자는 최근 "약속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폭로 대가로 민주당에서 1억원과 자녀 대학자금, 빌딩의 구내식당과 매점 제공 등을 약속 받았다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남의 뒤를 캐고 매수해 상대방을 협박하고 이익을 챙기는 것은 조직폭력배나 시정 잡배들이 하는 짓이다. 일국의 공당(公黨)이 정책이나 이념 대결을 통해 정권을 잡으려 하지 않고 저급하고 치졸한 매수 공작에 매달렸다니 우리 정치의 수준이 한심할 따름이다. 장씨의 비리를 옹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권력형 비리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고 폭로돼야 한다. 그러나 그 폭로 방법과 절차는 상식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정당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 정적 주변인물의 비리 폭로를 사주한 것은 자발적 폭로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정치 공작이다.
법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 증인을 매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범죄행위다. 정도를 걷지 않는 공당의 행위는 심판받아 마땅하다. 구시대적 사고의 청산과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양심을 돈으로 사는 풍토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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