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대에 남보다 영화 한편 먼저 본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일까마는, 그래도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그의 신작이 의외로 애덤 샌들러 주연의 코미디이고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과 감독상을 공동 수상했다는 소식에 이어 TV에 예고편이 나올 때까지 학수고대하던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았다. 폴 토머스 앤더슨과 로맨틱 코미디, 바보 코믹 연기만 하는 애덤 샌들러와 심각한 연기파 에밀리 왓슨.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엮어진 이 영화는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느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나타났다.베리(애덤 샌들러)는 앤더슨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샌 퍼낸도 밸리(LA 교외지역)에 사는 신경쇠약 직전의 사회부적응자다. 일곱 자매에 치여 한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질문에도 "잘 모르겠어요"라고밖에 말할 줄 모르는 그는 남에게 감정을 자신 있게 표현하지 못한다. "자주 내 자신이 미워요"라고 말하는 그는 "가끔씩 실컷 울거나" 유리창이나 공중화장실을 때려 부수는 것으로 감정을 발산한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주는 푸딩을 모아 평생 공짜 비행기를 타는 것. 이 얼뜨기 패배자에게 어느날 아침 길거리에 난데없이 내동댕이 쳐진 풍금과 함께 사랑(에밀리 왓슨)이 찾아온다.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바보 같은 그를 사랑해왔다는 이 여자의 힘으로 베리는 점차 용기와 삶의 아름다움을 얻어간다.
'로맨틱 코미디'의 구성요소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장르영화라 해야 할 것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의 대화는 코미디다. "당신의 눈이 너무 귀여워서 눈알을 빼먹고 싶어요." "당신의 얼굴이 너무 예뻐 완전히 묵사발을 만들고 싶었지."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도 등장한다. 우습게도 베리가 여자를 만나기 전 우연히 걸었던 폰섹스회사에서 자꾸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 데이트에까지 끼어 들어 해꼬지를 해댄다. 물론 주인공은 역경을 극복한다. 깡패들을 때려부수고, 심지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 두목에게 선언한다. "난 지금 내 생애의 사랑을 얻었어, 그건 너가 도저히 이해 못할 용기를 주는거라구!" 그리고 연인과의 멋진 키스.
그러나 장르영화를 장르영화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폴 토머스 앤더슨 같은 천재가 해내는 일이다. 그는 애덤 샌들러에게서 사회와 소통 불가능한 무력한 개인의 얼굴만을 뽑아내는 연기 컨트롤과 교통사고 소리, 공장의 소음 , 타악기 음악 등으로 평범한 사랑에 리듬과 긴장감을 주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과 완만한 왈츠 리듬으로 로맨틱함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내는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매그놀리아'처럼 정신이 멍해질 걸작을 기대한다면, '펀치 드렁크 러브'는 너무 느슨한 소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깨에 힘을 빼면 절망적인 이 사회의 유일한 희망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 신작은 훨씬 사랑스럽고 성숙하다. 벌써 그의 또 다른 새 영화가 기다려진다.
/이윤정 재미영화프로듀서 filmp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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