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녀는 강했다. 그리고 영리했다. 북한의 함봉실(28)이 13일 42.195㎞의 여자마라톤에서 2시간 33분35초를 기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함봉실은 이날 아시아드주경기장을 출발, 황령산을 끼고 광안리 해운대 등을 돌아오는 대회코스에서 32㎞지점부터 스퍼트, 1위로 골인했다. 함봉실은 1982 뉴델리 대회 이후 20년만에 북한 육상에 금메달을 안겼다.함봉실은 "남북 응원단이 열렬한 응원을 보내는 곳에서 승리, 정말 기쁘다"며 "14일 남측의 이봉주 선수도 꼭 우승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2·3위는 일본의 히로야마 하루미(2시간34분44초)와 오미나미 히로미(2시간37분48초)에게 각각 돌아갔다. 한국 최고기록 보유자인 권은주(25·삼성전자)는 37㎞지점에서 기권했다.
함봉실의 승리는 치밀한 작전과 현명한 레이스 운영의 결과였다. 함봉실은 초반에는 일본 한국 등 7명이 형성한 선두그룹의 중간쯤에 섞여 달렸다. 윤곽은 20㎞를 전후해 가려졌다. 한국의 권은주, 일본의 히로야마가 차례로 선두권에서 뒤처졌다. 22㎞ 지점부터 판세는 함봉실과 오미나미의 양자대결로 좁혀졌다. 함봉실은 오미나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2위로 레이스를 펼쳤다.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체력을 비축하는 한편 상대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전략이었다. 한 때 너무 근접해서 발이 서로 걸릴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오미나미를 그림자처럼 따라가던 함봉실은 상대가 지친 기색을 보이자 오르막이 시작되던 32㎞지점에서 선두로 치고 나가는 승부수를 던졌다. 주경기장을 앞둔 40㎞지점에서 함봉실은 갑자기 허리춤을 잡으며 쓰러질 듯했으나 이내 페이스를 회복,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부산=아시안게임특별취재단
● 함봉실은 누구
함봉실(28)은 제2의 정성옥으로 불리는 북한 여자마라톤의 대들보. 1988년 정성옥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지만 늘 정성옥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정성옥이 9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북한 최고칭호인 '공화국 영웅'이 됐지만, 함봉실의 국제대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정성옥이 은퇴한 뒤에도 운동을 계속하던 함봉실은 데뷔 12년이 지난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8위에 올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4월 평양 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2시간26분22초를 기록, 정성옥의 최고기록(2시간26분59초)을 37초나 앞당겼다. 8월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2관왕(5,000m 1만m)을 차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153㎝, 43㎏으로 군더더기 없는 작은 체구지만 지구력과 레이스 운영능력이 매우 좋다. 함봉실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정성옥 못지 않은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박진용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