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朴泰俊·75) 전 총리는 13일에도 북한의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직 제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북측 제의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부인하는 언급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복수의 소식통은 박 전 총리가 제의를 숙고중이며, 조만간 가부(可否)를 분명히 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박 전 총리의 침묵
박 전 총리의 침묵이 궁금증을 일으키는 가운데 그는 이날 부산 기장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한국과 이란과의 결승경기를 부인과 함께 관전, 눈길을 끌었다. 그의 최측근 인사는 "박 전 총리가 포철 경영과 행정 경험을 살려 통일사업에 기여할지 고심하고 있다"면서 "여론의 반향까지 감안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2000년 5월 총리직 사임 당시 재산 명의신탁 논란 등도 거론하며 "개인적으로는 명예를 회복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마지막 십자가'를 진다는 각오로 수용 의사를 밝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총리는 그러나 총리까지 역임한 자신이 북한 관직을 취득하는 데 따른 정치적 파장, 북한 당국의 의지와 신실성, 북·중 갈등의 향배 등을 살피며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측근은 "일부 보좌진이 정치적 시빗거리가 될 것을 우려해 사실자체를 부인했지만 이는 박 전 총리의 의중을 직접 전한 것은 아니다"면서 "양빈(楊斌) 장관 파문이 수습되고 북측의 입장이 더 분명해지면 장관직 제의내용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관직 제의 전달경로는
박 전 총리는 간접적으로 장관직을 제의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정부가 관여하지는 않은 것 같다. 청와대와 정보당국 등은 사전에 이를 알지 못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경로를 통했다면 내가 모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대북사업을 추진 중인 현대 등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등 북한 고위층의 메시지를 박 전 총리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떠오른다. 실제로 현대아산의 김윤규(金潤圭) 사장은 지난달 23일 방북한 후 3주째 중국 베이징(北京)과 평양을 오가며 북측과 물밑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박 전 총리의 인맥을 감안하면 일본 중국 등의 채널을 통해 북측의 제안이 전해졌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박 전 총리에게 신의주가 아니라 특구 지정이 임박한 개성공단 장관직을 제안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현대측의 대북사업구상이 주로 개성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라는 점도 이런 관측을 부른다. 북한은 올해 안에 개성공단에 대해 중국 선전(深쌭) 이상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특구법을 발표할 전망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북한도 楊 장관 파문을 겪으면서 남한의 도움이 보장되지 않는 특구의 무모함을 깨달았을 것"이라면서 "박 전 총리의 위상이라면 북측의 희망을 실현시킬 최상의 카드"라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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