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출이 특혜·외압의혹에 휘말리고 있는 가운데 차제에 산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금융권에서 제기되고 있다.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들어 각종 벤처비리와 권력형 금융사건에 산은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데다, 현대상선 대출도 외압에 의한 특혜지원일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단순한 내부통제시스템 강화 이상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정부로부터 산은 경영을 완전 독립시켜 상업금융회사화하거나, 산은의 정책금융과 상업금융을 분리시켜 상업금융은 조속히 민영화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계 봉착한 국책은행 기능
1950∼70년대 개발시대, 80년대 기술집약산업 육성시대, 외환위기이후 구조조정기의 산은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산은은 차관·재정자금, 산업금융채권 발행자금으로 국가 전략산업을 지원했고 외환위기 이후 모든 시중 은행들이 손사래 칠 때 이들을 대신해 기업구조조정 지원 역할을 수행했다. 99년 이후 벤처투자, 지난해 회사채신속인수제도와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 증권) 제도 등은 당시 논란도 있었지만 국가적인 위기국면에서 불가피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지난해말부터 벤처기업과의 검은 커넥션, 외압에 의한 대출시비 등 산은의 무리한 정책성 금융에 따른 부작용이 속속 드러났다. 임직원들이 '윤태식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고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 삼애인더스 해외 전환사채를 편법 인수한 것으로 드러나 금감원 경고조치를 받았다.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의 압력에 따른 특혜대출설도 제기됐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산은의 대북지원설 관련 의혹도 산은이 정부를 대신해 정책적인 고려의 금융지원을 담당해왔고, 이로 인해 조직이 외압에 쉽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관료체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산은, 전면 개조론 확산
산은은 최근 내부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금융연구원에 의뢰했다. 산은 고위관계자는 "내부통제시스템 강화와 수익모델 창출 방안 등이 중심"이라며 "기능재편 등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도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차 등 구조조정 현안이 남아있는 만큼 정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산은법 개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계와 정부 일각에서는 금융환경이 무한 경쟁체제로 전환하고, 상업금융이 국책은행 기능을 대체하게 된 만큼 이번 기회에 산은을 개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민영화는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상업 베이스의 경영이 가능하도록, 정부와의 제도적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산은은 상업금융 비중이 60∼70%에 달하지만, 은행이라기보다 공사·정부기관에 가깝다"며 "정부의 손실보전, 재정자금 지원 등의 고리를 끊고 예산·인사에서 정부 간섭을 배제, 정책적 판단보다는 상업적 판단에 따라 장기금융·투자은행 업무를 수행하는 은행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순수 정책금융과 상업금융간 차단벽을 쌓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상업금융 자회사의 조속한 민영화를 전제로 한 지주회사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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