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 지음·이수지 옮김 다른세상 발행·1만4,000원프랑스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1689∼1755)가 1721년 익명으로 발표한 사회비판 소설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완역돼 나왔다. 페르시아인의 눈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신성 모독' 논란과 함께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은 페르시아 이스파한의 대귀족으로, 정쟁을 피해 유럽 여행에 나선 우스벡과 그의 친구 리카가 가족, 친지와 주고 받은 편지 161통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다. 서슬 퍼런 권력의 눈을 피하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이방인을 화자(話者)로 내세운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하렘'(중세 이슬람 여성들이 내시의 감시 하에 격리돼 생활하던 곳)에서 벌어진 소동 등 양념을 머무리면서 프랑스 사회 구석구석을 마음껏 조롱한다.
그가 가장 날카로운 칼을 겨눈 대상은 "짐이 곧 국가"라고 선언한 태양왕 루이 14세의 전제정치. "프랑스 국왕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왕이더군. 금광보다 더 한정 없이 캐낼 수 있는, 신민들의 허영으로부터 부를 채굴하기 때문이지. 게다가 국왕은 대단한 마법가야. 전쟁이 있는데 돈이 한 푼도 없으면 종이조각 하나가 돈이라고 백성들 머리에 주입시키기만 하면 끝이야." 루이 14세가 관직과 귀족 칭호를 팔고, 국채를 발행한 것을 비꼰 대목이다.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도 몽테스키외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다. "국왕은 더 강력한 마법사(교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국왕이 백성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만큼 국왕 자신은 이 마법사로부터 정신적 지배를 받지. 셋이 하나('삼위일체'를 풍자한 것)라고 믿게 하질 않나…."
주인공들이 툭툭 내뱉는 촌철살인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삼권분립을 주창한 '법의 정신'(1748) 등 일련의 저작에서 드러난 몽테스키외 사상의 근간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완벽한 정부는 국민의 성향에 가장 잘 부합되는 방식을 빌려 통치하는 정부지." "국민들이 형벌이 가혹하다고 해서 법에 더 복종하는 건 아니야." "정의는 인간이 실존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네." 몽테스키외의 글은 당대 사회의 각종 폐해를 무섭게 꼬집고 있지만, 그 뿌리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녹아있다. 그의 비판 정신이 27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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