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코오롱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명품' 패션시장에 진출, 국내 명품시장의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선진기술 도입이 가능한 라이선스 계약 대신 완제품 수입판매 방식을 채택, 국내 브랜드 키우기에 적극 나서야 할 대기업이 수익성에 급급해 오히려 한국패션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비난도 높다.제일모직은 올 가을 미국의 유명 잡화브랜드 '케네스 콜'을 수입판매하면서 일본의 명품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도 같이 들여왔다. 현재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과 호텔신라내에 매장을 열었다. 코오롱은 자회사 FnC코오롱을 통해 프랑스 루이비통그룹(LVMH) 소유의 미국브랜드 '마크 제이콥스'를 내년 봄부터, '마크 바이 마크'는 내년 가을부터 수입판매한다. 코오롱은 4일 이웅열 회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LVMH의 카르셀 패션부문 회장과 만나 '마크 제이콥스'외에 '크리스찬 라크르와' 등 LVMH의 브랜드 1∼2개를 더 들여와 공동마케팅을 벌이는 방법을 협의했다. 또 현대종합상사도 독일 명품 브랜드 2개 수입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의 명품시장 진출은 2000년대 들어 명품시장이 급성장하는데 따른 것이다. 제일모직의 한 관계자는 '이세이 미야케' 수입을 "해외 명품브랜드로 급속히 대체되고있는 초고가 하이패션 여성복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 패션그룹의 유통시스템을 배워 패션기업으로서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방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차피 시장의 대세는 명품"이라는 FnC코오롱 마케팅실 조은주 과장은 "단순히 명품을 들여오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가 유통이나 직원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선진 패션기업의 시스템을 배워보자는 것"이라고 LVMH와의 제휴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명품시장 진출이 명분과는 달리 '국내 패션산업의 자생력을 해치는 행위'라는 비난도 많다. 선진 의류제조기술 학습 및 축적이 가능한 라이선스 계약이 아니라 완제품의 수입판매라는 점에서 대기업의 윤리를 망각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패션비평가 유재부씨는 "수입의류시장 전면개방 때 찬성론자들은 공정경쟁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지만 정작 현실은 수입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맹목적인 추종으로 국내 고가 디자이너 브랜드 시장이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대기업의 명품 직수입판매는 국내 브랜드와 디자이너를 키우고 세계화하는데 쓰여야 할 자본이 수입명품 열기를 부채질하는 쪽으로 남용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한때 유명 이탈리아 브랜드를 직수입했던 한 의류업체 대표는 "국내 백화점들이 명품 브랜드들의 전시장화하는 상태에서 대기업이 명품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그렇지않아도 영세한 국내 중소패션기업에 짐을 떠맡기는 꼴"이라고 분개했다. 유명 백화점들의 경우 수입명품 브랜드를 경쟁적으로 유치하기위해 매출 수수료율을 낮게 책정, 그 손해분 만큼을 국내 업체에서 보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명품브랜드의 백화점 매출수수료율은 국내 브랜드의 3분의 1수준이다.
1980년대 말 화장품회사들이 겪었던 수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주)태평양 홍보실 김태경 부장은 "국내 화장품회사들이 1980년대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를 다투어 수입판매하면서 홍보 전위부대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시장개방 이후 이들 브랜드가 직진출하자 이들의 자체 브랜드는 백화점 매장에서조차 밀려나는 등 순식간에 시장을 잠식당했다"면서 "자체 기술력을 쌓지않은 채 눈앞의 과실만 따먹기에 급급했던 회사들은 지금은 존재가치조차 미약할 정도로 고전하고있다"고 말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주 5일 근무제 확산으로 모처럼 활기를 띄고있는 국내 패션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대기업이 수입브랜드 도입보다는 독자적인 브랜드의 개발과 육성에 더 치중해야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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