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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케르테스/역사의 횡포 고발 "행동하는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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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케르테스/역사의 횡포 고발 "행동하는 사상가"

입력
200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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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 헝가리 소설가 케르테스 임레(73)가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수상소식을 들은 케르테스(헝가리는 성을 앞에 쓴다)는 "개인적 영광인 동시에 헝가리 문학의 영광"이라면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작품을 쓰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서 머물던 중 수상 소식을 들은 그는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됐다, 최소한 재정적으로는 그럴 것 같다"는 유머 섞인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192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케르테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제2의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비르케나우에 수용돼 1년여 강제 노역을 해야 했다. 이어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졌으며 1945년 종전 후에야 이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에는 국가의 제도적 폭력에 억압받는 개인의 고통이 녹아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케르테스의 전쟁 체험은 숨길 수 없는 역사의 증언"이라면서 "역사가 휘두른 횡포에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높이 샀다"고 수상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그 자신 제2차 세계대전을 두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이래 인류의 가장 큰 상처"라면서 "소설을 쓸 때마다 아우슈비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그는 종전 뒤 부다페스트 일간지 '빌라고샤그(개명·開明)'의 기자로 2년여 근무했다가, 신문사가 국유화하자 사퇴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케르테스는 몇 년 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됐던 콘라드 죄르지와 함께 헝가리 현대문학계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작가다. 그가 10여 년간의 퇴고 끝에 내놓은 첫번째 소설 '운명없는 존재'는 1975년 발간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다룬 이 소설은 그의 독특한 언어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죽음과 맞닿은 상황에서 초연한 자세로 살아남은 체험을 표현한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88년 발표한 '실패'와 이듬해 나온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위한 기도'는 첫 소설과 더불어 '운명없는 존재 3부작'으로 불린다.

케르테스의 첫 작품이 출간 당시 자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재판이 85년 출간, 서유럽에 일제히 번역되면서 유명해졌다. 이어 그의 많은 작품이 독일어로 옮겨져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영미권에서는 그의 작품 중 '운명없는 존재' 등 3권만이 번역돼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다.

케르테스는 수사학적 문장을 즐겨 구사하며, 이 문장을 사건과 연결시켜 소설을 구성한다. 범죄, 배신, 실패, 피치 못할 사건에 말려 드는 인간의 운명 등 복잡한 구성 요소들을 통합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런 창작 과정에 주목해 문단은 그를 '매우 복잡다단한 우주를 관통하는 질서에 대해 발언해온 작가'로 평가한다.

그는 시와 희곡과 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서 글을 써왔으며 번역도 중요한 활동으로 꼽힌다.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니체 등의 저서를 헝가리어로 번역하면서 이들의 사상적 유사성을 밝히는 작업을 끈질기게 추구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사상가들의 저서를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스스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세계의 평등과 정의가 유럽의 새로운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활동 때문에 열정적인 토론가이자 심오한 사상가라는 높은 평가를 함께 받고 있다. 92년 출간한 일기집 '노예선에서 쓰는 일기' 97년 발표한 수필집인 '누군가 다른 사람'도 가치있는 저작으로 평가된다.

최근 들어 노벨문학상 수상후보로 조금씩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그의 수상 경력은 만만치 않다. 92년에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위한 기도'가 미국 퍼블리셔스위클리가 선정한 '50대 최고의 책'에 꼽혔으며 95년 브란덴부르거 문학상, 97년 라히프치히 도서박람회에서 유럽우호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아직 국내에 번역, 소개되지 않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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