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엄습해 온 취업 불안감 때문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한두 달 전만해도 잔뜩 희망에 부풀었는데…." 취업 재수생인 윤모(27·서울 마포구 망원동)씨는 최근 보름사이에 서류전형만 세 차례나 떨어졌다. "지난해는 9·11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았는데, 올해는 미-이라크 전운 등으로 또 '실업테러'를 당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올 하반기 취업문이 넓어질 것이란 얼마 전까지의 '장밋빛 전망'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돌변, 취업 준비생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공습계획 여파로 유가 급등, 주가하락 등의 충격이 몰아치면서 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채용계획을 늦추거나 축소, 백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오후 서울 A대 취업정보센터에 모인 학생들도 당초 신입사원 1,500여명을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던 L사의 추천서가 불과 45장밖에 오지않는 등 예상보다 적은 기업들의 채용계획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또 지난달만 해도 주요대학에서는 하루에 3∼4차례의 취업설명회가 열렸지만 본격적인 취업시즌에 접어든 이 달엔 1∼2건으로 뚝 떨어졌다. 10여군데 입사원서를 낸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오모(29)씨는 "지난해와 같은 악몽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취업 관계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한양대 최기원(崔基元) 취업팀장은 "취업설명회가 거의 없었던 지난해 9월에 비해 올해는 50여건이나 열려 기대를 가졌지만 당장 이달은 지난달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혀를 찼다.
연세대 김농주(金弄柱) 취업담당관도 "올 상반기 대학생 취업률이 70.7%로 IMF 이전 수준에 근접하는 듯 했는데, 최근 갑자기 대기업체 인사 관계자들의 태도가 급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불과 한달 전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는 330여개 기업체를 조사해 "하반기 채용규모가 지난해보다 25.2%나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최근 또다른 채용정보업체 리쿠르트의 조사에서는 하반기 공채계획 기업이 한달전 113개사에서 83개사로 26%나 격감했다.
특히 기계·철강, 금융 부문은 지난달에 비해 채용인원이 각각 54%, 17.8%나 감소했고 한국도로공사, 산업은행, 삼성캐피털, 삼성생명, 남양알로에, 신세계푸드시스템, 전자랜드 등은 아예 채용계획을 백지화했다.
삼성경제연구원 이정일(李禎一) 수석연구원은 "대부분 수시채용 형태로 충원패턴이 변하면서 경기에 더욱 민감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미-이라크 전운, 미국 경제의 장기 침체 등이 겹쳐 하반기 취업난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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