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은 연기자의 당연한 욕심이다. 그러나 배두나는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잡티가 보이는 맨 얼굴로 나온다. "뽀시시하게 예쁘게 나오는 것, 그것도 좋죠. 하지만 전 원래 화장하는 걸 싫어해요. 아줌마가 밤에 남편 구하러 나가는 데 화장 뽀얗게 하고 나가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감독이 무척 예뻐할 만한 연기자다.영화 시사가 끝난 후 배두나는 투덜거린다. "모두들 연기 잘했다는 말은 안하고, 힘들겠다는 말만 해서 속상해요." 이제 배두나에게 "연기 잘한다"고는 말 안 한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사족이다. 배두나의 연기는 '배두나 식(式)'. 연기를 하는 듯, 하지 않는 듯한 이 묘한 연기는 영화를 끌고 가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술집에 잡힌 남편을 구하기 위해 아이를 질끈 업고 밤거리로 나선 스무 살 아줌마. "금순이는 배구도 잃고, 아이와 남편 밖에 없는 여자예요. 세상 경험도 별로 없고. 늘 실수 투성이고 망가지지만 그럴수록 더 사랑스런 캐릭터"라는 게 배두나가 해석한 금순이.
'플란더스의 개'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으로 이어지는 배두나의 영화 선구안은 독특했다. 그리고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반면 '굳세어라 금순아'는 가장 상업적인 영화다. "이 영화에는 상업적인 코드가 있지만 대중적인 것 같으면서도 두나의 취향이 있는 영화"라는 게 그녀의 설명. 두나 취향이란? "뭔가 찝찝함이 있는 영화"다. 코믹, 멜로처럼 한 장르로 딱 정의되지 않고, 비록 우습지만 보고 나면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있다거나 시니컬한 웃음이 나는 영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하지만 분명 배두나는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영화를 좋아한다. "살인극 '복수는 나의 것', 재난 영화 '튜브'를 찍고 나니 밝게 웃으면서 즐기는 영화를 하고 싶어" 웃다가 마지막에는 눈물을 흘린 '굳세어라 금순아'를 택했다.
전작에서 그랬듯 배두나는 이번에도 적잖이 고생했다. 조폭들에게 밤거리를 몇 시간 동안 계속 쫓겨 다니는 역할이라 뛰고, 또 뛰었다. "저보다는 카메라를 들고 찍는 분들이 더 고생했다"는 말에선 나이어린 스타답지 않게 스태프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 속 금순이는 초등학교부터 육상, 핸드볼, 배구 선수를 거친 인물. "초등학교 때 2년간 탁구 선수생활을 했지만 완전 '몸치'에요. 몸이 둔해요. 하지만 좀 날래게 보이려고 일부러 손을 뺨 가까이 대고 달렸어요."
요즘 살이 좀 빠져 눈은 전보다 더 커졌지만 쾌활함은 여전하다. 극중 남편 역을 맡은 김태우가 옆에서 "영화에선 생전 처음 코믹 연기를 선보였지만 평소 촬영장에서 책을 읽는 지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하자 "오빠가 책읽는다구? 하하하"하고 금세 웃음을 터뜨린다.
"남편이 술집에 잡히면 찾으러 가기는커녕 문도 안 열어줄 것"이라는 배두나. "흥행을 보는 눈이 없는지, '고양이…'나 '복수…'같은 영화가 가장 좋다"는 배두나. 취향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그녀 곁에 있으면 잠깐 행복해진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 굳세어라 금순아
우리의 금순이(배두나)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분단의 상징적 인물이 아니다. 스무 살의 철부지 아내이다. 국가 대표 배구선수로 이름을 날리다 어깨 부상으로 낙심하던 때에 따뜻하게 감싸준 회사원 준태(김태우)에게 빠져 일찌감치 결혼해 6개월 된 사내아이 같은 딸 송이를 키우며 사는 소시민.
맨 날 공만 때리다 결혼했으니 살림이 손방인 것은 당연지사. 밤중에 아이가 울면 신경질 내며 남편부터 깨우고, 늦잠으로 첫 출근부터 남편 지각하게 만들고, 귀뚜라미가 무서워 벌벌 떨고, 걸핏하면 친정 엄마(고두심)에게 전화 걸어 징징대고, 조폭들에게 쫓겨 죽어라 도망치느라 등에 업은 아이가 빠져 없어진 것도 모르는 천방지축. 남편의 표현을 빌자면 '까먹고 빼먹고 흘리고 태우기만 하는' 여자다.
그래도 금순이는 씩씩하다. 꿈을 포기한 아픔을 아무에게도 소리 높여 말하지 않고 혼자 배구경기장을 찾아 구경하는 것으로 달래고, 남편에게 귀여운 거짓말도 하고, 시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없는 솜씨지만 밤새도록 정성껏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정금순이 한밤중에 남편 구하기에 나섰다. 술 취해 사기꾼들에게 술값 바가지 쓰고 잡혀있는 남편을 찾으러 유흥가를 찾은 그녀의 좌우충돌.
'굳세어라 금순아'는 하룻밤사이 벌어진 금순이의 고난과 활약을 유쾌하게 담은 캐릭터 코미디이다. 영화는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돌아가듯 금순이로 하여금 유흥가를 맴돌게 한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군상들(조폭, 포장마차 주인, 노래방에서 일하는 옌벤 아줌마, 청소년을 유혹하는 어른, 악질 룸살롱 주인, 금순의 팬)과 금순이가 빚어내는 갖가지 충돌들을 매끄럽지는 않아도 멋있는 스파이크로 마무리하는 인정 많고 정의로운 금순이. 그녀를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101번째 프로포즈'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으로 10여년동안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현남섭의 감독 데뷔작이자, '난타' 송승환의 한국영화제작 1호 작품으로 18일 개봉. 12세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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