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후보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는 권 후보와 민노당의 이념적 지향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이 쏟아져 학술 토론회를 방불케 했다. 권 후보는 진보정당으로서 성격을 부각시키면서도 "(당의)이름이 아니라 정책을 보고 평가해야 할 것"이라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토론자들은 우선 "최근 토론회 등에서 민중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고 지적하면서 "온화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득표 전략이 아니냐"고 따졌다. 권 후보는 "소외되고 억압된 노동자들과 함께 한 것은 자랑스러운 경험이었다"면서도 "이 자리에서 붉은 머리띠와 삭발로 연상되는 과격한 이미지가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고 질문취지를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우리 당은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딴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려고 한다"고 이념적 지향을 규정했다.
권 후보는 기존 정당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해서도 "지난 정권보다 노동자 농민을 더 탄압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햇볕정책도 "평화공존을 뒤로 물리고 교류만으로 풀릴 것으로 본 점이나 재벌 중심으로 추진한 데 문제가 있다"면서 조목조목 비판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의 연대 의사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짜증스러운 반응까지 보였다. 그는 "노 후보의 재벌개혁 발언은 개혁성을 보이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민주당 역시 정경유착의 고리에 빠진 청산의 대상으로 반창(反昌) 연대가 필요하다면 같은 보수세력인 정몽준(鄭夢準) 후보와 손 잡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토론자들이 낮은 당선 가능성을 계속 지적하자 권 후보는 "진보 정당을 개척하는 길에서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서 "걸어갈 길이 험난하지만 집권 목표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농담을 섞어가며 비교적 솔직하게 전후 사정을 밝혔다. 맏딸의 동성동본 결혼에 심하게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당시 사회적 관념에 젖어있었고 참으로 무식했었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부인이 삼성에 인수된 동방생명 창업주의 딸이었던 점을 들어 처가의 도움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당시 처가는 사실상 망한 상태였고 지금도 처가에서는 기업 인수가 비정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장인이 먼저 돌아가시고 기업이 인수되지 않았다면 결혼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내도 나와 결혼해 행복하고 만족한다고 하더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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