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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고/전쟁과 중동의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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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고/전쟁과 중동의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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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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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와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가장 그럴 듯한 명분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중동의 부패한 정치질서를 변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전쟁으로 중동의 상황이 지금보다 더 억압적이고 불안정해질 개연성이 높다. 설령 무력 사용이 성공해서 반민주적 독재자들을 쫓아낸다 하더라도 군사력으로 민주주의를 강요할 수는 없다. 더구나 테러와의 전쟁이나 석유시장 안정, 미군의 안전 보장 등 미국 자체가 챙겨야 할 것이 많은 상황이어서 다른 나라의 민주화라는 명분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게다가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해도 아랍과 이슬람권 사람들은 전쟁을 미국 제국주의의 발로라고 볼 것이 뻔하다. 중동 국가들이 패배자가 될까 두려워 전쟁을 지지하거나 중립을 지킨다 해도 국민들은 이를 반대할 것이며 정부는 국민을 막기 위해 정치적 탄압을 자행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이 국민을 탄압하면서 미국을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민심을 따라 전쟁에 반대할 것인지 갈등한다면 미국이 어느 쪽을 선택하라고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와 같은 예는 가까운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테러조직 알 카에다와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뒷전으로 한 채 파키스탄과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가를 보면 된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더 큰 목적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중동 국가들과 미국의 관계에서 무시될 가능성이 많다.

동시에 우리는 중동 지역의 민주적 변화가 근본주의 이슬람 그룹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을 탐탁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10년 전 미국은 알제리에서 근본주의 이슬람 그룹이 당선되자 민주적으로 시행된 투표를 정부가 무효로 선언하도록 도왔으며 이로 인해 알제리는 억압적인 불안정과 테러에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미국은 이슬람 군사 정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됐다고 해도 세계 최대의 석유 산지이자 이슬람의 중심인 사우디 아라비아를 장악하도록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날 중동의 정치질서는 파산했다. 변화는 중동인의 이익을 위해서나 세계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나 변화를 위한 수단을 아무렇게나 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군사력의 사용은 다른 이유로 필요할지는 몰라도 권위주의적인 아랍 국가들에 있어 민주주의 운동을 촉진시키기는 커녕 질식시킬 가능성이 크다.

세계정치에서 미국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우세한 군사력에 의존한 바가 크지만 군사력의 구축은 경제력과 정치제도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치와 경제의 변화를 추구하는 많은 국가들은 자발적으로 미국의 제도를 본받아 왔다.

강력한 사상은 다른 국가를 고무시켜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중국 지도자들도 미국의 경제제도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껴 이를 먼저 받아들였다. 미국의 경제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은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속박을 풀지 않았던가.

전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알릴 수 있다고 해도 그 국가의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궁극적인 역할은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이며 이는 각 국가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와 같이 변화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파키스탄에서처럼 반작용만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전쟁을 통해 억지로 강요할 수 없으며 그 지역 국민들이 전쟁을 반대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이 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 나라 국민보다도 더 잘 안다는 식의 인식에 대해 대부분의 미국인은 옳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 발상은 분명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이상과도 양립할 수 없다.

쉬블리 텔아미 미국 메릴랜드대정치학과 교수/NYT 신디케이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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