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0월10일 영화배우 율 브리너가 작고했다. 그는 그보다 65년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본명이 타이제 칸인 율 브리너는 몽골인 광산 기사와 루마니아 집시 사이에서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 죽었다. 13세에 나이트클럽에서 발라드를 부르는 것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그는 서커스 곡예사와 유랑극단 배우, 텔레비전 디렉터를 거쳐 31세 때인 1951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뮤지컬 '왕과 나'의 주역을 맡아 스타로 발돋움했다. 1860년대 샴왕국(지금의 타이)을 배경으로 의롭되 완고한 통치자와 그 아이들의 영국인 가정교사 사이의 애정과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무려 1,246회나 연속 공연됐다. 율 브리너는 이 작품에서의 연기로 '연극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토니상을 받았다. 1956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왕과 나'에서도 율 브리너는 역시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왕과 나'에서 왕을 연기하기 위해 삭발한 머리를 그 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왕과 나' 외에 율 브리너의 대표작으로는 구약 성서에서 소재를 취한 '십계'와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막내딸 아나스타시아에 얽힌 소문을 소재로 취한 '아나스타시아'가 꼽힌다. 세 작품 모두 1956년 작이다. 1956년은 율 브리너에게 최고의 해였던 셈이다. '아나스타시아'는혁명군에게 처형당한 아나스타시아와 닮은 여성을 파리의 센 강변에서 발견하고 그를 진짜 왕녀로 조작해 로마노프 황가의 유산을 가로채려던 러시아 장군의 얘기다.
애연가였던 율 브리너는 폐암으로 죽기 직전에 텔레비전 공익 광고에 출연해 금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그는 말보로 담배의 광고 모델이었던 웨인 매클래런이나 올해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선배였다.
고종석 /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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