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의 국회 대표연설은 정권에 대한 고강도 비판과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의 비전 제시로 채워졌다. 양쪽을 관통하는 축은 '부패 청산'이었다. 현 정권을 '부패·무능 정권'으로 몰아세우는 한편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유능한 정권'을 만들겠다고 약속해 극적 대비 효과를 노렸다. 연말 대선을 겨냥한 것으로 한나라당의 대선 전략을 확인시켰다.서 대표는 대북 비밀 지원설 공적자금 탕진 현대와의 정경유착 서해교전 징후 묵살 국가기관 정치공작 동원 등을 '5대 국기문란사건'으로 들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임기 중 과오를 스스로 청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의 집권 후 청사진도 부정부패 척결에 무게를 실었다. 고위직·선출직 부패 사범에 대한 공소시효 연장 및 대통령 사면권 제한 등은 이런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부패방지위원회에 실질 조사권을 부여하고, 대통령 친인척과 비서실 비리 감찰 기구를 설치하겠다는 약속도 같은 취지이다.
대북 정책은 다소 유연해지고 있는 당론을 거듭 확인했다. 서 대표는 "북한의 개방·개혁 실험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울 자세가 돼 있으며, 북한이 군사 노선을 버린다면 경제난 해소를 위한 본격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대표는 연설의 상당 부분을 현대그룹 비판에 할애, 정몽준(鄭夢準) 의원을 강하게 견제했다. 그는 "정권의 비호로 대북 사업을 도맡아 온 현대는 알짜기업은 빼돌리고 적자기업은 공적자금으로 유지하는 부도덕한 특혜를 누려 왔다"고 주장한 뒤 "김대중 정권과 현대의 관계는 정경유착의 극치"라고 몰아세웠다. "현대는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는 노골적인 주문도 내놓았다. 연설 원고 작성 과정에서는 정 의원의 실명 거론까지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서 대표의 연설 도중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잇따라 고성이 오갔다. 민주당 의원들은 서 대표의 연설이 시작되면서부터 곧바로 "거짓말 하지 말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고함을 쳤고 그때마다 한나라당 의석에서 "조용히 하고 들어"라는 맞고함이 터져 나왔다.
서 대표는 처음 "조용히 해 주기 바란다", "민주당도 내일 대표연설이 있으니 예의를 지키라"고 차분하게 대응했으나, 민주당의 비난 고성이 계속되자 "정신차려, 민주당"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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