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월드컵 열기가 전국을 휩쓸었을 때 수많은 논객들이 그 의미 탐구에 매달렸다. '공동체 의식, 단결, 화합, 하나' 등과 같은 단어들로 표현되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분권'의 의미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래서 김동훈 국민대 교수가 쓴 '월드컵을 지역분권의 시발로'라는 제목의 칼럼이 돋보였다. 김 교수는 이 칼럼에서 월드컵 32게임이 10개 지역의 구장에 고르게 분배된 점에 주목하면서 이는 기존의 서울 중심주의에 도전을 주기에 충분한 기회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왜 지역분권이 중요한가? 국가 자원의 엄청난 비효율적 낭비를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치유 불능으로 간주되는 사회적 갈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번 째 장점과 관련하여, 김 교수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악습인 지역주의도 그 실질은 지방과는 별로 관계도 없는 서울 거주자들이 이익을 위해 출신지역을 팔아먹는 행태에 다름 아니다. 학벌주의라는 망국병도 서울 중심주의로 인해 지역거점 명문 대학들의 존재기반이 무너지면서 서울 소재의 몇몇 힘쓰는 대학들로 문학권력이 집중되고 그로 인해 파벌이 형성됨으로써 만들어진 악성의 문화 현상이다."
그렇다. 지역분권화는 한국 사회의 여러 '망국병'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도 우선적으로 지역분권화라고 하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서울이 아니다. 아니, 아니어야만 한다. 서울 거주자들이 지방 '내려가는' 게 불편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방 거주자들이 서울 '올라가는' 건 불편하지 않겠는가? 추석이나 설에만 '내려갈' 생각하지 말고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려가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구조와 의식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우리는 그간 지방분권화에 대해 지난 수십년간 누적되고 고착된 구조 탓만 하고 지방분권화를 이루기 위한 '비용'을 강조하면서 기존 질서에 안주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왔다. 부산 아시안게임은 다른 소중한 의미와 더불어 그런 잘못된 의식에 균열을 내는 축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지방자치는 1할7푼 짜리다. 국가 업무의 8할 3푼을 중앙이 먹고 나머지 1할 7푼만을 지방정부에 이양한 껍데기뿐인 지방자치라는 뜻이다. '식민자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에 줄을 대 로비를 잘하는 것이 자치단체장의 주된 능력이 되고 있는 '식민자치'가 지속되는 한 한국 민주주의엔 희망이 없다. 모든 선거는 중앙에 '우리 편' 사람 많이 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탕 개싸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산 아시안게임이 '지역분권으로 지역감정 선거 끝장내자'는 의식의 대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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