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로 김호석(45)씨만큼 인물화에 주력해온 사람은 드물다. 데뷔 이후 청년작가 시절, 그리고 42세의 젊은 나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1999년)로 선정되면서 한국화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기까지 그는 언제나 동시대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서 붓길을 찾았다.김씨가 3년만에 다시 인물화 19점으로 개인전을 연다. 9∼18일 서울 견지동 동산방 화랑(02-733-5877)에서 열리는 '열아홉번의 농담' 전이다. 변함없이 종이에 수묵, 혹은 채색 기법으로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표정을 담고 있다.
할아버지의 등을 올라타고 즐거워하는 소년, 소를 끌고 쟁기질하는 노인,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여인, 새치를 뽑아주는 아들의 손길에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중년 여인, 야생화를 꺾어들고 미소짓고 있는 소녀 등등.
그들의 입성이나 표정, 눈길에서 잊고 있었던 혹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평소에는 알아차릴 수 없었던 이 땅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묻어난다. 해학과 풍자 어린 화폭 뒤쪽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의 애환이 절절하게 배어나온다.
작가의 붓끝은 치밀하고도 담백하게 그것을 담아낸다. 사실 김씨 그림의 모델은 그의 가족이다. 불충실한 가장을 눈빛으로 타박하는 아내, 스스로의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아들, 막 여자 티를 내기 시작한 딸이다. 김씨는 그림 속 노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75세 된 아버지에게 몇 년 동안 수염을 길러 달라고 부탁했다. "가족이라는 사적인 대상 속에서 현대적인 익살, 해학의 보편성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웃음의 여운 끝에서 울고 있는 세상의 저편까지 담아내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1980년대 초반 송수남씨 등과 함께 '수묵화운동'을 주도한 김씨는 86년 첫 개인전 이후 12차례의 작품전을 열며 한국적 인물화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초상화에도 주력해 역사 인물화만으로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경남 산청군 겁외사 대웅전에 모셔진 성철 스님의 진영도 그의 작품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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