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에 능하고 불심이 깊고 리더십이 있으며 신뢰감을 주는 얼굴. 주인공인 재규역의 박신양과 맞장을 뜰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카리스마도 있어야 한다. 연기력은 물론이며 머리를 밀어야 하는 점을 감안해 CF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배우는 곤란하다' 등의 조건이 따라붙었던 '달마야 놀자'의 청명스님 역은 가장 마지막에 결정됐을 정도로 적역을 찾기 힘들었다."정진영이 딱이다. 잡아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씨네월드의 이준익 대표는 시나리오를 읽고 "잘할 수 있을지, 영화의 의도가 잘 파악이 안된다"며 거절을 한 그를 분당으로 찾아가고 또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캐스팅했다. 어렵게 캐스팅한 정진영의 청명 연기는 단연 최고였다. 스님들의 대표로 무게중심을 잡은 것은 물론 박신양과의 전면전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촬영 전부터 절로 들어가 스님들과의 생활을 일찌감치 시작했던 그의 노력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묻어났고 앞서 개봉된 '킬러들의 수다'의 흥행도 완벽했다.
옆에서 본 배우 정진영은 신중하고 자기의심이 많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는, 생각이 너무 많은 남자다. 문성근의 뒤를 이어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는 그를 보면 마치 준비했던 일을 하고 있는 듯 안정감이 넘친다. 서울대를 나왔지만 학구파 계열이라기보다 나이만큼 박학다식하고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기본적으로 따뜻한 심성을 감추지 못하는 마음 여린 구석이 많은 남자다.
그는 처음부터 배우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단다. 그는 내가 '초록물고기'를 광고하던 시절에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자막작업을 위해 사무실에 들렀던 모양이다. 그는 당시 늦깎이로 영화계에 막 입문한 연출부 소속이면서 감독님의 협박과 종용으로 한석규의, 트럭을 모는 형을 연기했다. 그리고는 이후 '약속' '교도소월드컵' '달마야 놀자' '킬러들의 수다'를 거치면서 주연급의 배우가 되었다.
농담처럼 생활고를 뛰어넘기가 어려운 연출부일을 계속하느냐 마느냐는 기로에 서있다가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하지만 그의 행보는 '운명'이란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달마야 놀자' 이후 밀려드는 시나리오를 감당하지 못했을 법한데 김유진 감독의 영화인 '와일드 카드'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약속'으로 이른바 뜨는 배우가 되었고 그 보은으로 김유진 감독의 다음 영화를 꼭 하겠다는 4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다렸던 것이다.
느긋하고 차분하고 진지하고 더구나 신뢰감을 주는 그와 작업을 같이 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다시 캐스팅하고 싶다는 욕심이 난다. 그는 감독에게 자신의 기운을 나누어주는 좋은 배우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하며 그가 지내온 값진 시간들이 그 영화에 행운을 가져다 줄 것으로 난 믿는다.
/정승혜 영화컬럼니스트 amsajah@hanmail.net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