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구비 골이 패인 험산을 막 넘어선 기분입니다."국내 물류업계의 '큰형님' 대한통운 곽영욱(郭泳旭·62) 사장에게 지난 3년은 마치 30년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던 국영기업 대한통운에 입사해 순탄한 삶을 살아오다 1999년부터 모회사인 동아건설의 대한통운 흡수통합 시도와 법정관리 등 잇따른 위기를, 그것도 대표이사의 자리에서 맞았기 때문이다.
"99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할 때 주변의 만류가 거셌습니다. 모회사에 대한 지급보증 때문에 회사가 휘청거려 직원들의 마음은 이미 회사를 떠났고, 곧 회사 간판을 내릴 날만을 꼽고 있는 상황에서 사장을 해서 무엇하겠느냐는 얘기들이었죠."
그러나 곽 사장은 쉽사리 대한통운을 등질 수 없었다. 64년 입사 당시 '회사의 고목이 되라'던 아버지의 당부도 귓전에서 맴돌았다. "저보다 이 회사와 물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제가 손을 놓아버리면 대한통운은 그대로 없어질 판인데, 최고참으로서의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더군요."
곽 사장은 우선 심각한 자금난을 겪던 회사를 위해 사재를 내놓았다. 이에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주머니돈을 털어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티끌 모아 태산' 식으로 모아진 돈이 200억원. 노조는 또 무쟁의, 임금동결, 상여금 및 복지비 반납 등 쉽지않은 결정을 내려줬다. 그가 17년간 지방지점장을 거치며 직원들로부터 쌓은 신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낮보다 밤에 일하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천하의 백전노장 물류맨이 "그 당시 고생은 죽어서야 잊혀질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곽 사장은 임직원들의 헌신에 인사(人事)로 답했다. 곽 사장 자신이 전무시절 맡았던 인천지점장에 부장급 직원을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본사직원의 지점장 발령 관행을 없애 해당지역 출신자를 지점장으로 발탁했다. 당연히 부지점장이 최종 목표이던 지점 직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또 과·차장급으로 구성한 인사평가요원들이 모든 인사를 검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능력 이외의 요소가 인사에 개입할 수 없도록 했다.
곽 사장은 우수한 구조조정 실적에 대한 대가로 올 4월 2,000만원의 특별 상여금을 받았다. 곽 사장은 이 돈으로 '눈물날 정도로 고마운 직원'들에게 라면 4,000상자를 사줬다. "사장 이전부터 그들은 내 친형제나 다름없었습니다. 40년 가까이 한 회사를 다니다 보니 강경하기로 소문난 항운노조, 각 지역별 노조와도 친해졌습니다. 결국 이들의 협조를 토대로 대한통운을 되살린 셈이죠."
곽 사장은 99년 대표이사 취임식장에서 '순이익 1,000억원의 제일 좋은 회사'를 대한통운의 비전으로 내걸었다. 그 비전의 실현이 다가오고 있다. "순익 1,000억원은 이르면 내년쯤 달성할 것 같으니 거의 다 됐고, 이제는 대한통운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회사로 만드는 일이 남았습니다. 직원들을 경제적,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그들이 자랑스럽게 '대한통운에 다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제 소임을 다하게 되는 겁니다."
곽 사장은 "이제는 희망이 훨씬 크다"며 활짝 웃는다. 출중한 사업 노하우에 더해 수많은 국내 지점 및 출장소 해외지사 등 거미줄 네트워크를 갖춘 대한통운의 앞에 밝은 미래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국제 엑스포 등 국내에서 초대형 행사가 줄을 잇고 있어 내외의 여건도 제2의 도약을 하기에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 "남북의 육로가 열려 철의 실크로드가 생기면 대한통운의 사세는 중국, 러시아, 유럽으로 뻗어갈 겁니다."
/글=김태훈기자 oneway@hk.co.kr
사진=박서강기자
● 곽영욱 사장은 누구
1940년 충남 금산
1958년 전주고 졸업
196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
1964년 대한통운 입사
1982년 대한통운 전주지점 장
1995년 대한통운 전무
1999년 대한통운 대표이사
2000년 대한상공회의소 물류 ·유통위원장
● 대한통운은 어떤 회사
대한통운은 우리나라의 '국가대표' 물류기업이다.
모기업인 동아건설의 부도로 2000년 11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에도 1위 자리를 한해도 빼앗기지 않은 부동의 1위 기업이다.
대한통운의 매출은 2000년 1조26억원, 지난해 9,597억원, 올들어 8월까지 7,082억원 등으로 법정관리 이후에도 크게 줄지 않았다. 오히려 세전이익은 2000년 255억원, 2001년 504억원, 올 8월 현재 379억원 등으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세전이익(600억원 전망)을 올리고 매출도 법정관리 이전인 1조원대 회복이 무난할 전망이다. 부채도 법정관리 당시 6,848억원에서 현재 5,463억원으로 줄었다.
1930년 조선미곡창고로 출발한 대한통운의 사업영역은 육상운송, 항만하역, 택배, 렌트카, 환경사업, 할인마트, 이사 등이다. 이중 육상운송과 항만하역이 전체 매출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택배 분야에서 매년 30∼40%의 고속성장을 누리고 있다.
대한통운이 모기업의 부도와 법정관리라는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이유는 업계 최고 수준의 물류 인프라 확보에 있다. 이 회사는 전국 38개 지점과 347개 출장소, 1만1,000여개 택배취급점, 10개 해외지사를 보유하고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부터 2002 한·일 월드컵, 부산 아시안게임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벌어진 대형 국제행사의 물류를 도맡은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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