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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공자금에 던지는 근본적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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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공자금에 던지는 근본적 의문

입력
2002.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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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가 지난 4년 반 동안 부실기업정리와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투입했던 156조원의 공적자금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국회는 당초 7∼9일 사흘간 국정조사 청문회를 열기로 해놓고 증인채택 문제에 합의하지 못했다. 즉 증인채택 시한을 넘기게 돼 설사 청문회가 열린다 하더라도 증인 없는 청문회가 될 것이어서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해 1월과 똑 같은 양상이 되풀이 된 것이다.한나라당은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의 투입이 타당성과 공정성, 운영과 관리에 있어서 합리성과 적법성에 따라 이뤄졌는가, 그 과정에 부정과 비리 정치적 압력 등이 작용하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정부가 발표한 상환방법은 적절하며 회수불능이 된 69조원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등을 따져 묻겠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민주당의 주장은 보다 원인 지향적인 것이었다. 공적자금 투입을 불가피하게 만든 근본적 원인이 전 정권의 정책 실패였기 때문에 공적자금청문회에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한나라당에 대해 우선 잘못을 따져 묻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대립하던 양당은 진실규명보다는 대선을 겨냥한 정략적 차원에서 증인 채택과 자료제출 문제 등으로 다툼을 계속하다가 끝내 청문회를 무산시키고 만 것이다. 그러나 국회 사정이야 어떻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공적자금 문제에 대해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정부는 출발 당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핵심 정책기조로 내세웠다. 그런데 시장경제 논리와 공적자금 투입은 원칙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대 사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국가가 공적자금을 투입했다면 그것은 이미 사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시장경제 논리에서 벗어난 정책이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영화를 추진했다. 손실이 누적돼 부도가 나면 국민세금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킨 후, 그 기업을 주로 다른 외국기업이 인수토록 한 것이다. 공적자금 투입 때와는 달리 다시 시장경제 논리가 고개를 든 셈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결국 국가권력이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공적자금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사기업의 이윤창출을 지원해주고 국민들에게 손해를 떠넘긴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한 제일은행을 외국기업이 헐값에 인수해간 일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따라서 공적자금에 대한 국정조사는 공적자금 투입의 불가피성 여부에 대한 근원적인 검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절대로 당연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특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이 기본적으로 정립될 때 공적자금의 회수책임도 그 만큼 높아질 것이다.

공적자금은 부도난 기업에 투입한 것이기 때문에 회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재경부장관의 발언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56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신규투자에 사용했다면 훨씬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경제개혁을 달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회수할 전망도 없는 도산한 기업에 투입했는가?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다.

물론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금융구조조정이 상당한 정도로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방법이 원칙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은 국가 경제정책의 기본 틀을 흔들게 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번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러한 문제들이 다뤄질 수 있었을 텐데 정치권의 흥정과 국회의 직무유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그러나 국가의 근본적인 경제정책과 관련된 이런 질문들은 비록 국정조사 청문회의 장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그 해답이 제시되어야 할 우리 전체의 숙제로 남아 있다.

박영호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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