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델 베리 지음·정승진 옮김 (주)양문 발행·8,000원미국의 지식인이자 에세이스트 웬델 베리는 낮에만 글을 쓴다. 그것도 연필이나 펜으로 종이 위에 쓴다. 아내는 그의 원고를 받아 1956년 생산된 로열 스탠더드 타자기로 글을 친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컴퓨터를 사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컴퓨터를 사지 않았다. 앞으로도 사지 않을 작정이다. 컴퓨터 작동에 필요한 전력은 자연의 질서를 위배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이용에 따른 편리함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진정한 기술 혁신이 아니다.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는 영문학자이자 시인, 고향 켄터키로 내려가 전통적 방법으로 농사짓는 농부인 그가 인간과 문명에 대해 생각하는 성찰의 글 모음이다.
책은 그가 컴퓨터를 사지 않는 이유를 밝힌 글과 이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한다. 자연 파괴에 반대하는 글을 쓰면서 자연을 약탈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컴퓨터를 구입하면 타자기를 버리고 비평가이자 가까운 독자 그리고 동료인 아내와의 관계도 희생된다는 게 컴퓨터를 거부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글로 그는 아내를 착취한다, 지나친 이상주의자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줄 모른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얼마 후 이에 반박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여기서 기술의 진보와 신소재의 개발이 파괴와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아내의 역할은 출판사의 타이피스트 겸 편집자로 이해하면 된다고 쓴다.
그는 책에서 산업화의 폐해를 일관되게 지적한다. 사회를 기계화 대형화 도시화하고 경쟁을 부추기며 인간의 가치를 저울질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에 맞춰 현대인은 중앙집중적 구조와 획일적 교육,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살아가며 지역 경제가 몰락하고 세대간 연속성이 단절되며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산업화는 또 가정의 역할을 직장과 학교로 떠넘기게 하고 유무형의 혜택을 도시의 일부 사람이 독점하게 만들며 가정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물질적 대가 없는 노동을 소모적이고 가치없는 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고 개탄한다.
그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개발과 개별 특수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교통문제를 해결하려면 길을 새로 내는 대신 자전거 도로나 사람이 다니는 길을 늘리고 자동차 이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특히 중요한 것은 개인의 각성과 참여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글은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손상하는 모든 행위, 즉 환경 파괴와 잘못된 음식문화, 소비 위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며 지난해 9·11 테러 이후 평화를 명분으로 이뤄진 전쟁의 속성을 꼬집기도 한다. 이 글은 올해 '녹색평론' 1,2월호에 실리기도 했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갈 것을 강조하면서도 낭만주의적 요소를 드러내거나 농촌을 미화하지 않아 책의 설득력을 높인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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