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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우리는 시기한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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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우리는 시기한다 왜냐하면…

입력
2002.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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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하우블 지음·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발행·1만6,500원"아니야, 난 시기하는 사람이 아니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시기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당했다면 과연 "나는 시기심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한 사회복지 시설이 사용하는 사무실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신만의 사무실을 가질 수 없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사무실이 생겼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금방 실습을 마친 젊은 녀석이 이 사무실을 차지했다.

#장기간 입원해 있던 할머니가 숨졌다. 돈이 많은 할머니는 죽기 전 유언장을 남겼지만 내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유언장이 공개됐다. 오래 전부터 외국에 살면서 친척들과 연락을 끊은 조카에게 값비싼 골동품을 넘기라는 것이었다.

#휴가철의 고속도로. 2차로 도로에 자동차가 넘쳐 난다. 한 운전자가 1차로와 2차로를 번갈아 옮겨 다니며 나를 추월하고 속도를 높인다.

독일 아우그스부르크대 심리학과 교수 롤프 하우블이 지난해 출간한 '시기심'(원제 der Neid)은 시기심의 본질과, 현실에서 나타나는 여러 양태를 탐구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시기심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결코 감추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책을 써내려 갔다.

저자는 시기심이 이성간 세대간 형제간에도 존재하고 직장에서도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면서 우선 프로이트를 인용,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갖고 있는 성적 시기심을 소개한다.

남자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친밀하게 만나는 사람이 엄마다. 아이는 엄마와 하나가 되고 싶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마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늘 엄마 가까이 머물면서 아빠와 경쟁한다. 아이에게 아빠는 시기의 대상이다. 반대로 여자 아이는 엄마를 시기하면서 아빠를 따른다.

형제간 시기심은 부모의 사랑을 선점한 맏이와, 이를 뺏으려는 동생 사이에서 나타난다. 특히 동생이 태어난 뒤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는 맏이는 기득권 포기가 쉽지 않다. 물론 부모가 사랑을 고루 나눠준다면 커가면서 이런 시기심이 많이 누그러진다. 그러나 형제들은 다른 형제가 더 많은 사랑을 갖는 건 아닌지 예의주시한다.

세대간 시기심도 존재한다. 대개 아랫세대를 향한 윗세대의 시기심이다. 노인들은 자신에게서 이미 떠나버린 젊음을 부러워하며 젊은이를 시기하기 쉽다. 첫 아이가 태어난 뒤 엄마와 아이가 너무 가까워지면 이를 시기하는 아빠도 많다.

세대간 시기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는 가족 회사. 저자에 따르면 독일어 사용권에 있는 회사의 절반 이상이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다. 그런데 막상 2세에게 회사가 넘어가는 비율은 절반 정도, 3세에게 넘어가는 비율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는 시기심도 그 중 하나로 꼽는다. 즉 창업 1세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회사를 일군 사실을 자식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자식들은 회사를 이어 받아 잘 경영해야 한다는 부담은 가져도 아버지가 원하는 경의감을 표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이 때 아버지는 회사를 그냥 이어받으려는 자식들을 시기한다.

직장 동료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이지만 자신과의 비교 대상이라는 점에서 시기심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일부러 나쁜 소문을 내거나 농담을 가장해 동료를 시기하는 마음을 표출하기도 한다. 특히 직위가 높은 남자와 직위가 낮은 여자가 사내에서 사귄다면 여자가 남자의 혜택을 볼 것이라는 의심을 하면서 시기하는 경우가 많다.

시기심과 비슷한 개념으로 질투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시기심을 시기하는 사람과 대상 사이의 양자 관계로 보지만 질투는 삼각관계에 빠진 남녀처럼 제3의 인물이 개입된 개념으로 설명된다.

심리분석가로 여러 사람의 심리를 치료한 저자는 그 경험을 통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면 시기심에 느긋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시기심을 극복하고 있는데 우울, 야심, 분노가 그 방법들이다. 우울은 시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고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때 그런 능력이 없는 자신에게 격분하고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야심은 상대의 능력에 감탄은 하면서도 자신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으면서 상대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 경쟁하려 하는 것. 분노는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고 불법성을 폭로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문학 종교 광고 등 여러 분야에서 표현된 시기심을 소개하는 것은 이 책의 매력이다. 연극배우 알베르 보레가 '다양한 인상연구'라는 책에서 '눈썹을 찡그리고눈은 반쯤 감고 시선은 옆을 향하고 윗입술은 높이 치켜들고…'하는 식으로 시기심 연기법을 설명한 것이나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가방을 쳐다보면서 그 여성을 시기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광고 등이 좋은 보기다.

시기심의 복합성을 보여줌으로써 도식성에서 탈피한 것도 장점이다. 가령 보수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을 못 가진 자의 시기심으로 보겠지만 이 책대로라면 계급투쟁은 분배를 정당하게 하는 긍정적 기능을 하게 된다.

책은 시기심이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시기심 많은 사회가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정당한 방식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드물고 부나 기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는 사회가 그렇다. 개인 차원의 시기심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그 시기심이 도처에 넘쳐서 사회의 생동감과 창의성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하는 일은 늘 시기심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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