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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노인은 곧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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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노인은 곧 우리다

입력
2002.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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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우리를 낳아 기르고 문화를 창조 계승하며, 국가와 사회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여 온 어른으로서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노후를 안락하게 지내야 할 분이다. 그러나 인구의 고령화와 사회구조 및 가치관의 변화는 점차 노후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다.'우리는 고유의 가족제도 아래 경로효친과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풍양속을 가진 국민으로서 이를 발전시켜 노인을 경애하고 봉양하여 노후를 즐길 수 있도록 노인복지 증진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상은 우리나라 경로헌장의 전문(前文)이다. 원래는 노인헌장이라는 이름으로 1982년 5월 8일에 제정되었다고 한다. 헌장은 전문에 이어서 5개 항의 강령을 제시하고 있는데 노인은 자손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야 한다든가 능력에 따라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 주로 노인의 권익사항을 선언적으로 명시한 것을 보면 어린이헌장이 발상의 기초에 있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이다. 특히 평범하기는 하지만 노후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는 요인을 지적한 부분은 마음에 와 닿기도 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 헌장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노인문제의 처방을 주로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노인문제를 사회문제 이전에 먼저 신변문제로 겪고 있다. 일반적인 추세가 그것을 가족간의 문제로만 생각하여 쉬쉬하고 넘어가서 그렇지, 그 사정을 드러내놓고 보면 매우 심각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 자신도 최근 심신이 여러모로 한계상황에 이르신 팔순 노모의 문제로 매우 어려운 가족간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번민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가정적으로 겪는 노인문제는 결국 많은 부분이 사회적, 역사적 변수에 걸쳐 있음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를테면 노인문제는 핵가족의 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고 개인주의의 직접적인 영향 속에 있으며 자본주의의 논리와도 치명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때로 그 연관성은 너무나도 폭넓고 중중(重重)무진하여 그 화두 하나만 끝까지 밀고 나가도 개인적으로는 해탈이, 사회적으로는 중생구제가 가능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노인문제에 오늘날의 온갖 문제점들이 집약되어 있음을 안다는 것은 노인을 공양하여야 할 입장에 있는 자식들, 특히 노인을 모시거나 혹은 모시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통과 번민을 안고 사는 많은 며느리들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또 그런 인식은 전통적인 효자상이나 효부상이 노인문제를 해결하는 마땅한 수단이 아님을 말해주기도 한다.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무조건 강요하는 이런 관념은 결국 부모 공양을 여성에게 씌워진 운명적 굴레로 인식케 함으로써 급기야 그것을 당당하게 거부하는 것이 앞선 여성의 미덕인양 여기는 일련의 반작용을 낳을 뿐이다.

결국 문제해결은 우리 각자와 외롭고 소외된 노인과의 직접적인 인간관계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원점에서 볼 때 부모를 공경하고 더 나아가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모든 젊은 사람들의 수기(修己)의 일환이고 사회적으로는 사회정의의 실현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늙음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형통한 날에 다가올 곤궁한 날을 생각하는 것은 삶에 깊이와 양감(量感)을 더하는 일이고 밖으로는 고독한 노인들을 보살피고 공경하는 마음의 기초가 된다. 죽음을 배제한 삶이 오히려 삶을 해하고 늙음을 외면한 청춘이 오히려 청춘을 병들게 함을 생각할 때 노인을 배제한 사회가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일 수가 없는 것이다.

노모의 문제로 번민하는 중이라선지 오늘따라 저 청춘남녀의 결혼 문제로 지지고 볶는 저녁 드라마의 거짓된 선전, 인간의 삶이 청춘만의 왕국으로 영원히 치장될 듯한 싸구려 환상을 파는 저 처량한 놀음이 새삼 미워진다.

/이 수 태 수필가·"어른되기 어려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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