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산업은행과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과연 '대북 비밀지원설'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날 국감을 통해 당좌 거래내역이 공개되고, 핵심 당사자들에 대한 집요한 추궁이 이뤄질 경우 정부와 현대, 북한을 연결 지을 새로운 '단서'가 포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감을 통해 밝혀져야 할 의혹과 쟁점을 정리해본다.1.4,000억원 어디에 쓰였나
4,000억원의 산업은행 대출금이 과연 한나라당 주장대로 북한으로 송금됐는지, 또는 계열사나 대주주 지원에 쓰였는지가 밝혀져야 할 의혹의 핵심이다. 그러나 현대상선이 대출금 전액을 자기앞수표로 찾아 간 데다 은행거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당시 금융권 전체의 입출금내역과 해당 수표의 궤적을 일일이 추적하지 않는 한 4,000억원의 행방을 규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현대상선은 대출금의 대부분을 계열사의 기업어음(CP) 매입이나 선박용선료 등에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거래내역을 공개한 것이 아니어서 이 같은 해명을 수긍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2.왜 半期보고서엔 빠졌나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빌려준 것은 2000년 6월 7일. 현대상선은 이날 대출 승인이 난 직후 한도 전액을 한꺼번에 빼냈다. 이후 6월 29일 3,000억원을 갚았다가 이튿날인 30일 다시 빼낸 흔적이 있지만 6월말 기준으로는 4,000억원을 모두 빌려 쓴 상태였다. 그러나 금융당국에 보고한 당시 상반기보고서에는 산업은행 단기차입금을 1,000억원으로만 기재해 3,000억원을 누락시켰다. 상환일 역시 실제(1차 6월 30일, 2차 9월 28일)와 달리 12월 29일로 기록, 분식회계를 시도한 혐의가 역력하다.
3.자기앞수표로 인출 이유는
정당한 자금 집행이라면 간편하게 당좌수표로 결제하거나, 계좌이체를 해도 되는데 이를 굳이 현금이나 다름없는 자기앞수표로 다시 바꿔간 점도 수상하다. 통상 은행과 당좌거래를 하는 기업들은 당좌한도 내에서 당좌수표를 발행, 자유롭게 결제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때문에 4,000억원의 거액을 일일이 자기앞수표로 쪼개서 바꿔놓았다는 것은 자금의 사용처를 감추기 위한 '자금세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4.산업은행 특혜대출 배경은
산업은행이 주거래은행(외환은행)을 제쳐두고 자금지원에 나선 경위에 대해서도 의원들의 집중추궁이 예상된다. 2000년 6월 당시만 해도 현대상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여신규모는 2,600억원. 6월 7일 당좌대출 4,000억원에 이어 6월 28일 900억원의 운영자금 대출이 이뤄졌으니 기존 여신의 두 배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이 주거래 관계도 아닌 일반기업에 제공된 셈이다. 더욱이 당시 외환은행 여신라인은 "산업은행의 대출사실조차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어 대출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5.핵심 당사자들 잠적 이유는
사건해결의 열쇠를 쥔 핵심 인물들이 의혹만 남긴 채 잠적한 것도 의문이다. 김충식 전현대상선 사장은 행방이 묘연하고, 파문 확산에 기여한 엄낙용 전 산은 총재도 특별한 이유없이 은신중이다. 대출 당시 산은 총재였고 지난번 국감에서 북한송금 가능성을 부분 인정했던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4일 국감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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