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정신지체 1급인 장남 김도연(당시 15세)군을 잃은 박인숙(40·여·경남 마산시 고암동)씨는 밤 마다 악몽을 꾼다. 학원에서 경주 보문 단지로 여행을 갔던 아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박씨는 충격으로 한달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퇴원 후 백방으로 아들을 수소문했다. 신문광고를 내고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남편과 함께 매주 보육시설과 정신병원을 찾아 다니느라 많지 않은 재산까지 거의 탕진했다. 그러나 21개월째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을 정신병원에 팔면 A급 사례금을 준다'는 소문도 들었다"는 박씨는 "'개구리 소년'처럼 아들이 유해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돼 잠이 오지 않는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아 4분의1, 750여명은 장기미아
전 국민적인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개구리 소년'들이 11년여 만에 유골로 돌아오자 후진적인 실종·미아 관리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해 19세 이하의 가출 및 행방불명 신고 건수는 무려 2만2,441명. 하루 61.4명이 미아 공포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통상 이 가운데 96% 이상이 24시간 안에 부모품으로 되돌아가고, 나머지 4%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복지재단 어린이찾아주기 종합센터에 남게 된다.
어린이찾아주기 종합센터가 설립된 1986년부터 지난 해 7월까지 접수된 미아 3,179명 중 2,433명(76.5%)은 가족과 이미 상봉했다. 하지만 발생신고의 약 4분의 1인 749명(23.5%)은 장기 미아로 남아있다. 올해 5월 하교 길에 딸 송이(9)양이 사라진 강동완씨는 "'개구리소년'처럼 사회적인 관심이 많은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종결된다"고 꼬집었다.
▶장기 미아 일수록 학대확률도 높아
장기 미아가 비교적 시설이 열악한 '미인가 보호시설' 에라도 수용되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장기 미아 대부분이 해외 입양아로 팔려갔거나 소매치기 등 범죄조직에 악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미아의 경우 반강제적으로 장기가 밀매되는 사건도 종종 발생해 부모들의 상처난 가슴을 더욱 패이게 하고 있다. 자폐증 환자였던 박재환(가명·17)군은 실종된 지 4개월 만에 부모 품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콩팥 1개가 사라진 후였다. '개구리 소년'처럼 사고로 인해 사망한 경우는 최악이다.
전국 미아·실종 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최용진(崔庸鎭) 회장은 "실종된 지 오래될수록 건강한 모습으로 미아를 되찾을 확률은 낮아지기 때문에 장기 미아의 부모 대부분은 아예 자녀 찾기를 포기한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담당자는 3명, 1년 예산은 6,100만원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가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미아발생 건수나 장기미아가 많은 것은 허술한 관리체계 탓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유일의 미아찾기 공식 기관인 어린이찾아주기 종합센터에서 미아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고작 3명, 1년 예산은 6,100만원에 불과하다. 전산업무, 인적기록관리, 미아수색 작업 등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예산 및 인력 문제로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한국복지재단 박은미(朴銀美) 복지사업국장은 "미국은 미아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개별 팀이 따로 구성돼 당황한 부모를 진정시키고, 적극적인 수색작업에 나선다"며 "우리에겐 꿈만 같은 얘기"라고 하소연했다.
미아 신고 자료의 전산화도 시급한 과제다. 어린이찾아주기 센터측은 전산시스템이 달라 경찰청 신고 때 접수된 미아에 대한 정보를 바로 받지 못하고 직원이 1주일에 2차례씩 직접 가서 데이터를 넘겨받아 수작업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인가한 보호시설(270여곳) 보다 2.5배나 많은 미인가시설(680곳)의 미아 관련 정보가 전산망에서 제외돼 있거나 입력돼 있어도 오류가 많아 미아찾기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실종된 김현용(가명·실종 당시 11세)군의 부모는 아들을 7년 만에 찾고는 엉성한 미아관리체계에 혀를 찼다. 3번이나 들렀던 경기 파주시 모 보육시설이 인적기록부에 아들의 이름과 나이를 잘못 표기한 바람에 번번이 아들을 눈 앞에서 놓쳤다.
▶실종아동관리법 제정 절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노충래(盧忠來)교수는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미아관리체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아동을 유기, 납치 등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미아신고 의무화, 실종아동 수색팀 가동, 수색시 유관기관 협조 등을 골자로 한 실종아동관련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김형모(金亨謀) 교수는 "미국의 경우 모든 주에 NCMEC(National center for missing & exploited children)라는 미아찾아주기 민간단체가 있고, 이들이 경찰 등 유관기관과 24시간 협조체계가 구축되어 있다"며 민관 협력체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정원수기자nobleliar@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최용진 "미아·실종가족찾기" 회장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매 순간이 악몽입니다. 어서 꿈에서 깨기만을 바라고 있죠."
전국 미아·실종 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최용진(崔庸鎭·41) 회장도 딸을 잃어버린 아픈 기억을 간직한 부모다. 2000년 4월부터 딸 준원이(당시 6세)를 찾아 전국을 헤매던 최 회장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과 함께 1년 전 이 모임을 만들었다. 경찰과 행정관서에 기댈 만큼 기대봤지만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매년 5,000명의 미아가 발생해 300명 정도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경찰 수사가 얼마나 성의 없는지, 인가를 받은 보육시설에서도 아이들 신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부는 모를 겁니다." 가족 찾기 모임에는 실종 어린이 부모 200여 명이 가입해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최근 개구리 소년 유골 발견에 충격을 받아 몸져 누웠다는 것이 최 회장의 전언이다.
최 회장은 "경찰은 초동수사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개구리 소년 사건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며 "미아 발생 후 3시간을 소홀히 하면 찾는 데 3일이 걸리고, 3일이 지나면 3년, 3년이 지나면 평생 걸려도 아이를 찾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미아가 파출소에서 구청, 일시보호시설을 거쳐 아동보육시설에 수용되는 기본적인 과정을 체계화하자는 것. 그는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완비되지 못해 아들, 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조차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비인가 시설 현황을 빨리 파악하고 장기 실종 어린이 관련 법률을 제정하면 미아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