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집은 온통 개미판이다. 얼마 전 한두마리씩 눈에 띄던 개미가 이젠 부엌, 화장실, 침실, 공부방 할 것 없이 무차별로 출몰하고 있다. 큰 애는 공부하다말고 “엄마, 지금 개미가 내 팔위를 기어오르고 있어”라며 비명을 지르고 난리다. 며칠전에는 목욕하려고 욕조에 몸을 담궜더니 물위로 개미 두 마리가 떠오르더라나?“얘, 너희들이 개미를 보고 호들갑을 떠는 건 고질라가 사람을 보고 무서워 하는 거하고 똑같애.” 이건 인간의 집이 아니라 개미 집이라고 흥분하는 두 딸아이에게 나는 세상은 함께 사는 것이라며 개미와의 동거를 종용하고 있다. 그건 뭐 내가 ‘개미 제국의 발견’을 쓴 서울대 최재천 교수의 열렬한 팬이라거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서가 아니다. 그냥 눈에 거슬리는 것과는 한 순간도 함께 있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야박함을 우리 아이들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조간신문에는 집안의 진드기를 깨끗이 없애준다는 업체의 전단지가 끼어 있고, 홈쇼핑에선 칫솔에 붙어있는 세균을 몇만배로 확대해 보여주며 세균 공포증을 부추긴다. 앗, 우리가 지금까지 저렇게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았단 말인가. 그래 우리 화장실에도 칫솔 살균기 하나 들여놓자 싶어 전화기를 들려다 태어나 지금까지 세균 투성이 칫솔로 이를 닦아왔어도 별 탈 없었다는 깨달음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나치면 뭐든 모자람과 같다는 지적은 현대인의 위생 결벽증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며칠전 눈에 번쩍 띄는 뉴스를 만났다. 공부 삼아 구독하는 영자지에 소개된 뉴욕 타임즈 기사였는데 한마디로 ‘적당한 더러움은 오히려 득이 된다’라는 얘기였다. 최근 유럽 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깨끗한 집안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좀 지저분한 집에서 크는 아이들이 천식이나 알레르기에 걸릴 확률이 훨씬 적다. 박테리아에 어릴 때부터 노출되면 이에 대한 면역이 생겨 더 튼튼해 진다는 설명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 대가족속에서 북적대며 크는 아이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면역성이 강해질 수 있는 셈이다.
나처럼 게으른 엄마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는지 기사 말미에는 ‘그렇다고 아이를 일부러 더럽게 키워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는 토가 달려있다. 하지만 늘 반짝반짝 윤이 나는 집안 상태가 아니어도 좋다는 면죄부를 과학의 이름으로 받아든 것만 해도 어디인가.
아이들 등쌀에 드디어 개미 킬러를 사왔다. 우선 아이들 방 곳곳에 놓아줬다. 하지만 부엌만큼은 개미들의 행진을 허락하기로 했다. 개미가 나오는 집은 잘 된다는 말도 있거니와 또 누가 아는가, 개미가 예방해주는 병을 과학자들이 곧 발견해 낼지.
이덕규ㆍ자유기고가기자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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